정부가 사상 최대 약가인하를 단행하기로 한 배경에는 건강보험 재정에 의지해 리베이트로 연명하는 후진적인 제약산업 현실이 녹아있다.
다국적제약사들이 값비싼 오리지널약을 들여와 비용부담이 커지자 정부는 국내 회사들이 복제약을 많이 만들어내도록 장려하기 위해 수십년전 만들어놨던 약가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 안에만 안주하며 먹고 사는 제약사들이 급증해 건강보험 전체를 좀먹는 지경까지 왔다고 판단한 정부가 이번에 '칼을 빼 든' 것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12일 약가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지나치게 높은 약가 때문에 영세기업들이 난립하고 기술투자보다는 판매경쟁에 치중하는 후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제약기업 중 '옥석'을 가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정책 추진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10위 제약사 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10%를 넘어서는 곳은 LG생명과학 1곳뿐이다. 대부분이 5~7%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제일약품과 한독약품은 각각 3.3%와 4.1%로 5%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판매관리비는 47.6%인 동아제약을 필두로 종근당 47.0%, LG생명과학 44.1%, 보령제약 34.5% 등 매출액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개발보다는 영업에 치중했다는 얘기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상장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6.3%로 다국적 제약사 평균인 17%의 3분의 1 수준"이라며 "통상 리베이트 등에 사용되는 국내 제약사의 판매관리비 비중은 35.6%로 제조업체 평균의 3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사업구조는 후진적이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해 경영실적은 어느 분야보다 '건실'하다.
80개 제약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2010년 의약품산업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제약사의 매출액은 1999년 5조2000억원에서 2010년 14조4000억원으로 10년간 2.7배가 됐다. 매년 약 11%씩 성장한 결과다.
영업이익률은 2009년 기준 10.8%로 제조업 6.8%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부채비율도 50~60% 수준으로 제조업 평균 89.6%에 비해 낮다. 그만큼 안전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는 사이 건강보험 재정은 약제비 부담에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36조원 규모의 전체 건강보험 재정 중 약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2조8000억원 수준으로 29.3%까지 치솟으며 재정위기를 앞당기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약가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고령화까지 맞물려 향후 2~3년 내에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복지부는 이날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모든 의약품의 가격을 평균 17% 일괄인하하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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