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넋 놓고 시세 구경...서로 위로하기도

머니투데이 김성호 기자 | 2011.08.09 10:46

영업직원 "바늘방석..연신 담배만"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투자자가 1,700선 마저도 무너져버린 시황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그나마 있는 돈 까먹는 사람이야 나은 편이죠. 신용으로 투자한 사람들은 죽을 맛일 겁니다".(투자자 김씨)

국내증시가 6거래일째 패닉 상태에 빠지면서 증권사 영업점에선 투자자가 같은 투자자를 위로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증권사 영업점을 찾은 투자자들은 이미 손절매 타이밍마저 놓치고 넋 놓고 시세 판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그나마 여윳돈으로 투자한 사람들이 신용투자로 계좌가 깡통 될 위기에 놓인 투자자들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있는 것.

영업점 직원들도 이처럼 웃지 못 할 상황에 하나 둘 자리를 떠나 연신 담배 연기만 뿜어대고 있다.

↑ 9일 오전 현재 폭락중인 코스피. 임성균 기자
◇"원금 까먹은 건 양반이야. 난 빚더미 앉게 생겼어"

지난 7월 투자자 김씨는 여윳돈을 가지고 우량 종목 2개에 투자했다. 펀드에서 적잖은 수익을 내고 환매한 자금을 주식에 투자한 것.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펀드에서 벌어들인 돈은 물론 원금마저 손실을 보게 됐다.

김씨는 답답한 마음에 9일 오전 자신이 거래하는 증권사 영업점을 찾았다. 6일째 급락하는 시세판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순간, 옆에 앉아 울상을 짓고 있는 투자자와 자연스럽게 얘기가 오갔다.

지난 5월 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다는 투자자 박씨는 증권사로부터 신용융자까지 받아 적잖은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잠시 조정에 빠졌던 증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박씨의 신용융자를 이용한 투자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싶었다. 그러나 미국, 유럽발 악재로 흔들리기 시작한 국내증시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기점으로 속수무책 없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박씨는 담보 부족으로 인한 반대매매로 인해 원금은 고사하고 빚만 지게 된 상황에 몰렸다.


김씨는 "원금을 손해 보는 나 같은 케이스는 양반"이라며 "영업점에 나와보면 신용거래로 깡통 계좌가 돼버린 투자자들이 혹시나 딴 마음이나 먹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항의할 힘도 없다"…투자자 넋 놓고 시세판만 구경

전일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항의로 북새통을 이뤘던 증권사 영업점은 이날 비교적 차분한 모습이다. 패닉에 빠진 증시가 호전돼서가 아니라, 항의할 힘마저 잃어버린 투자자들이 물끄러미 시세 판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증권사 영업점 관계자는 "오늘은 대체로 투자자들이 영업점에 마련된 시세 판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 투자자들의 전화 문의가 오고 있지만 대부분 항의성 보다는 지금이라도 손절을 해야 하는지 등 대응방안을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증권사 영업직원들도 투자자들의 침묵 속에 그저 숨죽이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일부 직원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정도.

유태우 삼성증권 본점 영업부 PB팀장은 "하락장이라고 해도 2000, 1900선은 지켜내지 않을까 했는데 힘없이 무너지니 투자자들이 답답해한다"며 "지금와서 매도를 결정하기도 어렵고, 고객 역시 막상 쉽게 결정을 못 내리며 한숨만 쉬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 직원들은 자리에 앉아 있기도 부담스러운지 종종 자리를 비우고 있다. 영업점을 찾는 투자자들 대부분이 쌈짓돈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증시 급락에 따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오기 때문이다.

한 중형증권사 영업직원은 "이틀새 담배량이 2배가 됐다"며 "자리를 지켜도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다보니 연신 담배만 피우게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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