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고졸 행원들은 왜 사라졌을까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오상헌 기자 | 2011.07.28 06:20

1980년대까진 '상고 출신' 뱅커 전성시대… '학력인플레·학벌주의' 고졸출신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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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갓 취직한 은행원이 셈법에 서툴러 상고 출신 상사에게 주판으로 맞으면서 일을 배웠죠".

A시중은행 인사 담당자의 말이다. 1980년대 은행에선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능력 있는 상고 출신들이 은행으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젊은 고졸 행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학벌 좋은 대학 졸업자들이 채웠다. 고졸 행원은 왜 사라진 걸까.

은행권에서 '고졸 행원'이 득세(?)한 건 1980년대까지다. A시중은행의 경우 1980년대 중반 고졸 신입행원이 대졸 출신보다 5배나 많았다. 1970년대 B시중은행은 고졸자 입사비율이 90%를 넘었다고 한다.

한 시중은행 인사부 관계자는 "과거 덕수상고나 선린상고, 서울여상 등 소위 명문 상고 출신들은 금융권에 입사지원서만 내면 거의 무조건 합격이었다"며 "학업 성적은 우수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상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한국은행이나 민간은행에 곧바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현역을 떠났지만 고졸 출신 최고경영자(CEO)로 신한금융지주를 이끌었던 라응찬 전 회장(선린상고 졸업)이나 신상훈 전 사장(군산상고)이 이런 케이스다. 금융권 CEO 중 유일하게 상고를 나온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동지상고)도 마찬가지다.

넘쳐났던 고졸 신입행원의 씨가 마르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다. 배경은 다양하다. 시중은행 인사 담당자들은 가장 큰 이유로 '학력 인플레'를 꼽는다. 학벌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너도나도 대학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현재 대학진학률은 80%대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그러면서 명문 상고의 개념도 희미해졌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위기로 취업난이 가중되자 고졸 행원 차지였던 창구 텔러 직군까지 대졸자로 채워졌다"며 "경제 개발시대 제조업에 밀렸던 금융권이 구직자들 사이에서 취업시장의 '황금알'로 바뀌면서 고학력자들이 은행으로 몰려든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책임도 크다. '능력'보단 '간판'을 우선시했다.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대란을 거치고 2004년부터 신입 행원 채용이 본격화됐지만 고졸 출신이 설 자리는 사라졌다. 2009~2010년의 경우 은행권 신입직원 중 고졸 출신 비율은 6%에도 못 미친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은행만의 얘기는 아니지만 개인 능력보단 학벌을 잣대로 조직원을 평가하는 풍조도 고졸 구직자들의 금융권 입사가 줄어든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은행도 할 말은 있다. '사람 장사'인 은행에서 좋은 인재를 찾다보니 대졸 신입행원 채용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은행권 인사 담당자는 "상고 등 전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인적 수요 측면에서도 고졸 행원 채용이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 고졸 출신 은행원은 "은행권에 최근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가 될까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은행의 다양한 직군과 직무 특성에 맞는 인재를 적재적소 배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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