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편적 복지 문제가 내년 대선 및 총선과 관련, 정치권의 화두로 제기되면서 종종 이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필자 역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 논란의 주요 화제는 복지가 성장을 저해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성장을 견인하는가에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거대담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거시적인 담론일수록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복지와 성장의 관계가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이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지금까지 실증결과를 보면 후진국의 경우 성장이 복지를 견인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경제규모가 성장한 이후에는 그 관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경제적 모호성은 결국 논의에 정치적 판단을 불러들이기 마련이다. 이게 위험요소다. 우리나라처럼 정치 과잉인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년 선거를 염두에 두다보니 근시안적 정치적 계산이 우선돼 거대담론식 논의가 핵심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향후 세계경제의 화두는 양극화 문제와 경기변동의 불확실성 확대, 이 두 가지가 될 것으로 보는데 복지 문제는 전자의 틀 안에서 그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지난주부터 미국이 어닝시즌에 들어서 예상보다 기업의 실적이 훨씬 좋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용지표는 개선의 기미가 없다. 결국 성장의 과실은 소수 주주에게 편중되고 고용을 통해 중산층 이하로 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의 퇴색, 수출산업의 고용유발 효과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점, 서비스산업의 발전 부진 등 여러 이유로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알게 모르게 지난 20년간 세계경제에서 진행된 패러다임 시프트다. IT를 필두로 한 정보기술의 비약적 발전 그리고 금융의 비대화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IT와 금융은 고학력 고용을 창출하는 유발효과가 높지만 특성상 고용 전체를 견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술이 진보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가 동시에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복지는 양극화 해소와 고용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쟁사회에서 패자를 보호하고 보험기능을 하는 선별적 복지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보다 인기가 있는 보편적 복지를 겨냥하고 있다. 복지재원은 차별적 징수를 통해 해소하고 지출은 보편적으로 하는 게 효과적일까? 차별적으로 징수해서 차별적으로 지출하라. 그래야 부유층도 명분이 있고 필요재원을 현실화해 그들의 반항을 줄일 수 있을 것 아닌가?
또 복지지출은 루비콘강과 같다. 건너면 돌아올 수 없는. 복지지출을 늘렸다가 사후에 줄이는 건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다가 빼앗는 것과 같이 엄청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이제 복지문제의 배후에 있는 표계산은 치워라. 복지문제는 단기적인 표계산에 좌지우지되기에는 너무도 장기적인 주제다. 옛날 김학렬 경제수석이 한 공무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바로 한강대교로 가라. 강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고 있는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후자면 바로 뛰어내려라"라고. 지금 표계산에만 여념이 없는 정치권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마침 여의도에서 한강대교는 그다지 멀지도 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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