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떠난 '기획부동산'…"평창 주민만 잡는다"

머니투데이 평창(강원)=전병윤 기자 | 2011.07.25 05:38

[르포]기획부동산 잡기 '뒷북' 토지거래허가구역 후 실수요도 차단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후 평창군 대령면 입구에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담은 현수막들이 줄지어 걸려있다.
지난 23일 평창군 대관령면 입구. '평창 동계올림픽을 반대한다'는 큼직한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동계올림픽 개최를 간절히 염원하며 결과 발표 후 감격에 겨워 눈물짓던 모습과 180도 달라졌다.

◇"동계올림픽 반대" 험악해진 분위기
정부가 대관령면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면서 현지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면 앞으로 5년간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를 거래할 때 관할 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용도에 따라 허가 목적대로 이용해야 한다. 투기적 수요를 차단시키려는 목적으로 기획부동산업체들의 기승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현지 사정은 정부가 생각했던 것과 거리가 있다. 기획부동산들은 이미 2003~2004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이 들어설 알펜시아리조트를 끼고 있는 횡계리와 용산리 인근 토지들을 대거 사들였다.

이들은 토지를 수십여 곳으로 쪼개 5배 이상 높은 값으로 팔아버렸다. 지금은 살 만한 토지들이 이런 식으로 정리됐고 알펜시아 인근 73% 가량은 외지인들이 소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횡계리 D공인중개 대표는 "동계올림픽 시설들을 지을 부지 주변에 대해서만 '조준 폭격'하듯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정해야 하는데 대상 범위를 '융단 폭격'처럼 무차별적으로 묶어버렸기 때문에 땅을 팔아 급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주민들은 또 5년을 기다려야 하다보니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며 "기획부동산 잡겠다고 주민들만 잡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인근 S공인중개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현재로선 실수요자들의 심리마저 꺾어버린 상황"이라며 "실수요자들은 절차상 번거롭긴 하겠지만 거래하는데 문제될 게 없어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했다.

↑기획부동산들이 횡계리 토지를 잘개 쪼개 팔은 흔적.

◇기획부동산 300평 이하로 미리 쪼개…피해자들만 고통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지 않은 봉평면 일대도 분위기가 싸늘하긴 마찬가지다. 기획부동산들이 프리스타일스키와 스노보드 경기장이 지어질 보광휘닉스파크 일대인 무이리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토지거래허가구역에 포함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봉평면은 흥정계곡과 허브나라공원 등을 중심으로 펜션촌을 형성하고 있다. 동계올림픽 개최 후 펜션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한껏 부풀었지만 이젠 풀이 죽은 상황이다. 수년 전 기획부동산에게 속아 땅을 샀던 피해자들의 하소연만이 전화벨을 울리고 있다.

봉평면 B공인중개 관계자는 "맹지(도로가 없는)나 걸어서 올라갈 엄두도 안 나는 비탈진 임야를 속아서 산 피해자들이 팔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전화만 하루에 30여 통 온다"고 말했다. 그나마 매매될 만한 땅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매수자가 없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기획부동산들은 임야를 토지거래허가구역 제외 대상인 992㎡(300평) 이하로 쪼개 놓아서 법망을 미리 피해 놓은 뒤 지금도 조금씩 팔고 있다"며 "정부가 뒷북을 치는 바람에 건전한 거래마저 실종시켰다"고 꼬집었다.

↑기획부동산들이 토지 분할을 해 놓고 속여 판 봉평면 야산.

◇'랜드푸어' 땅 팔아야 빚 청산…생존권 투쟁
국토해양부는 기획부동산들이 법원의 확정판결(화해·조정조서)을 받기만 하면 토지분할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해 온 것을 막기 위해 확정판결 후라도 분할허가를 받도록 개정했다. 이 같은 조치도 선의의 피해가 우려된다.

봉평면 펜션개발업체 대표는 "지방은 토지 면적이 대부분 크기 때문에 펜션을 지으려면 소형 토지를 사야 하는데 토지 분할 자체가 어려워지면 실수요자들의 물꼬도 막혀버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의 시장 교란을 막기 위한 조치들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운 반면 현지 주민들의 고통만 키우고 있다. 도시의 '하우스푸어'처럼 평창에선 대출 이자부담에 허덕인 채 땅만 갖고 있는 '랜드푸어'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인근 O공인중개 대표는 "빚을 내 땅을 샀거나 농사 실패로 농협 대출을 크게 끼고 있는 현지인들이 적지 않다"며 "소유한 토지를 팔아 빚을 갚아야 하지만 매매가 끊겨 경매로 넘어가야 될 상황에 몰리고 있어 생존권 투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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