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국의 정취가 물씬…다채로운 바다색깔
출국 당일 장대같이 굵은 비가 내려 꽂혔던 인천공항과 달리 오키나와의 풍경은 남태평양의 여느 한가로운 휴양지와 다름없었다.
옥색과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 그 넓은 창공을 유유히 유영하는 뭉게구름, 울창한 열대 야자수의 정취는 남국의 유명휴양지와 비슷한 교집합을 이룬다.
오키나와는 일본 남서부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크고 작은 6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오키나와 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주도(主島)다. 크기는 제주도의 약 2.5배 정도. 본래 류큐왕국으로 불리던 독립 국가였지만 19세기 후반 일본의 침략을 받아 오키나와 현으로 '창씨개명'된 곳이다. 우리에겐 낯설지 않은 스토리다.
일본에서 또 다른 일본을 만날 수 있는 곳. 오키나와는 일본여행이 식상한 여행자에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형용하기 어려운 물빛에 가장 먼저 시선이 고정된다.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해변 가까이는 맑고 투명하다가 수심에 따라 깊어지면서 옅은 초록으로 변하고,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연한 파랑으로 바뀐다. 수평선에 이르면 짙은 잉크색이 돼 하늘빛과 대비되는 '파랑'의 다채로운 색채 변화가 신비롭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파란 바다는 자로 그은 듯 기다란 수평선을 만들어 낸다. 햇볕은 부서질 듯 맑고 강렬하다. 목이 말랐던 탓일까. 시원한 바다와 하늘 색깔이 이곳 오키나와의 명물인 '오리온 맥주'처럼 마시고 싶어진다.
△ 스릴 넘치는 수상레포츠…'물속에 별천지가!'
오키나와는 골프 휴양지와 조용한 여행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레포츠 천국이다. 일본 최고의 다이빙 장소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투명한 바다 속의 신비로운 생태계를 몸으로 느끼는데 스쿠버다이빙만한 게 있으랴.
'기노완(Ginowan)' 시내에서 요트를 타고 40분을 나가니 별천지가 펼쳐진다. 현지인이 '강추' 하는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다.
전용 슈트를 입고 스노클을 사이즈에 맞게 조절한다. 발에는 핀이라고 부르는 오리발을 신으면 준비 끝. 수중 호흡장치를 입에 물고 간단한 '이퀄라이징'(수중에서 고막의 압력을 적응시키기 위한 동작) 훈련을 거친다. 드디어 입수.
'풍덩! 꼬르륵~' 처음엔 고막이 아프고 호흡이 불편하지만 이내 적응이 된다. 긴장이 풀리자 눈앞에 지상 최대의 천연수족관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봐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수심이 18m에 달하지만 바다 속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다.
발차기도 오리발의 도움으로 쉽고 빨라졌다.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물고기들과 산호 사이로 느긋이 움직이는 어패류들, 팔뚝만한 해삼과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불가사리…. 수중에서 안내를 맡은 '버디'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소라를 잡아준다. 이 경험, 정말 짜릿하다. 말 그대로 대박이다.
고개를 들어 수면을 올려다보니 빛이 굴절되는 모습이 예술이다. 신비롭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도전의 두려움만 극복하면 누구나 산호초에 자생하는 열대어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얼음에 채운 음료수와 맥주를 마시며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에 열중하다 보면 오래 쌓인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오키나와는 다양한 코스의 다이빙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투어가 연계상품을 곧 출시할 예정이다.
△ 독특한 류큐왕국의 문화, 그 역사의 파편들
바다 속에서 펼쳐지는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경험이 전부가 아니다. 오키나와에서 꼭 들려야할 곳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수리성'이다. 오키나와 최대의 목조건축물로 붉은 외관, 곡선으로 처리된 처마 등 중국과 일본 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오키나와 본토 복귀 20주년을 기념해 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1992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동중국해와 중심가인 나하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구릉지에 세워져 있다.
오키나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으로는 석회암이 침식돼 만들어진 기괴한 모습의 절벽과 반짝이는 바다 물빛이 어우러진 '만좌모'가 있다. 18세기 류큐의 쇼케이왕이 '만인이 앉아도 넉넉한 벌판'이라고 칭해 만좌모란 이름으로 유래된 천연잔디밭이다.
바로 아래 산호 절벽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경관이 유명하다. 코끼리 코 모양을 한 절벽이 아름다운 바다와 절경을 이루는 오키나와의 명소다.
오키나와 최대 테마파크 오키나와월드에서는 류큐 왕국의 참모습이 숨 쉬고 있다. 당시 실제 거리를 재현해 놓은 마을에서 전통 가옥 등을 만날 수 있다. 방문객들이 직접 오키나와 전통 공예품을 만들어보는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테마파크 중앙 무대에서 하루 네 차례 공연되는 '에이사' 군무도 빼놓지 마시라. 어깨에 커다란 북을 짊어지고 땅을 힘껏 박차며 흥을 돋우는 에이사 군무는 박력 있고 신명 넘친다. 우리네 강강수월래를 연상시킨다.
옥천동 동굴도 이곳의 볼거리다.
1967년 발견된 전장 5km의 종유석 동굴인 옥천동은 자연이 만들어낸 억겁의 신비가 볼 만하다. 카메라 렌즈에 담아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장엄하다. 작은 렌즈를 통해 보는 건 대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죽순과 거인 돌, 황금의 잔 등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이 있는데 890m 구간만 일반에 공개돼 있다. 동굴 내를 잔잔하게 흐르는 물에서 토종 민물고기, 새우, 게 등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키나와 해양기념공원에 위치한 '츄라우미 수족관'도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 수족관, 볼만하다. 바다 한 귀퉁이를 뚝 떼어낸 듯 다양한 바다생물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고래상어, 그리고 바다에서 가장 큰 가오리 중 하나인 만타가오리가 수족관의 최고 인기스타다. 자연광이 내리쬐는 거대한 수조에서 엄청난 크기의 고래상어와 만타가오리가 유영하는 모습에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한다.
입장 요금이 성인 1800엔(한화 약 2만3600원)으로 만만치 않지만 비싼 만큼 제값을 한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돌고래 쇼도 눈요기 감이다. 오키나와 특산물인 나고 파인애플 농장, 아열대 식물원도 근처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다.
△ 여름밤, 국제거리에서 오키나와에 '간빠이'를
오키나와에는 조선인들의 아픔도 서려 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징용당한 한국인들 1만 여명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됐다. 그 넋을 기리기 위해 1975년 한국인 위령탑이 세워졌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한국인 관광객에게 휴양지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오키나와에서는 밤에도 쉽게 잠들 수가 없다.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중심 도시 나하(那覇)시에서 가장 번화한 '고쿠사이(국제)거리'는 밤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약 1.6km의 거리에 백화점, 특산물 가게, 영화관, 레스토랑, 선술집 등이 이어져 있고 소박한 좌판도 펼쳐진다.
지붕을 열어 접은 멋진 스포츠카, 잘생기고 세련된 젊은 커플, 각양각색의 외지 사람들, 거리의 호객행위가 남대문시장처럼 친숙하다.
저녁에는 가라오케나 이자카야의 네온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일본 본토의 하라주쿠나 신주쿠를 연상시킨다. 여행 마지막 날 의기투합한 일행이 한 선술집에 모였다. 가사도, 의미도 알아들을 수 없는 엔카가 지겹도록 흐른다.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의 오키나와 특산소주 '아와모리' 한잔에 일본식으로 '간빠이(乾杯)'를 외친다. 저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여행 뒷얘기를 쏟아낸다.
"오키나와 여행은 굳이 의미를 둘 필요가 없어요. 누구의 간섭도 시선도 의식할 필요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햇살이 비치는 대로 그렇게 여유를 만끽하면 되니까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남국의 여행지가 오키나와잖아요."
'야마'(기사의 주제를 뜻하는 일본식 은어)를 내내 고민했던 기자에게 한 일행은 명쾌한 시선으로 오키나와를 정의했다.
그렇다. 오키나와에서는 무언가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아름다운 산호초와 무리지어 유영하는 열대어가 있고, 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소박한 사람들과 아련한 파도소리도 있다.
세상의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은, 천상의 존재 같은 영원성이다. 그러면서도 박제되지 않고 생동하는, 역동적인 아름다움과 변화의 여지도 놓지 않는 곳이 오키나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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