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W 사태' 뒤의 4無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 2011.07.12 10:24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사람이 평생 가보지 않아야 하는 곳이 몇 곳 있다.
법원 검찰 같은 곳도 그 중 하나이다. '신뢰'를 생명으로 해야 하는 금융기관 대표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피고인 신분으로 그 자리에 서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론 망신이고 회사로선 무형의 가치 추락이다.

1명도 아닌 12명의 국내 대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서는 증시 역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불려야 마땅하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이 정도 되면 개별 회사 차원도 넘어서 증권시장 전체가 재판정에 서는 것이다.

대출 부정으로 외환위기 불씨를 제공한 몇몇 은행의 전직 행장이 처벌됐고, '바이코리아'의 주역 이익치씨처럼 증권사 대표도 단죄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현직 금융기관장이 그것도 '한 다스'씩이나 기소된 적은 없었다.

기소된 증권사 사장 가운데 상당수는 본인이나 회사가 기소된 뒤에야 "대체 ELW가 뭐기에..."라고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ELW에 대해서는 '무지(無知)'했다.
"관리책임을 지라면 몰라도 '공범'이라는건 심하다"는 한 대표의 말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금융기관장이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무지'가 완전한 면책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세계 경제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배운 것 중의 하나는 '파는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 상품은 결국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눈앞의 수익을 좇은 실무선의 판단이 일을 크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ELW가 '세계1위' 시장으로 급팽창한 마당에는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검찰에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만나는 증권사 사람들마다 검찰 기소를 보면서 던지는 한마디는 '무리(無理)'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증권 사장이 아니라 은행장이었다면 12명이 아니라 2명인들 기소했겠느냐"고 자조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 자본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사법 당국이 바라보는 증시는 여전히 '꾼들의 세계'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한탄으로 들린다.


기소되지 않은 한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타이밍이 최악이었다"고도 말한다. 대검 중수부 폐지 같은 사법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검찰 기소의 강도가 필요 이상으로 강해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검찰이야 '턱도 없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피고'들로서는 내놓을만한 불평이다.

원고와 피고로 무대에선 검찰과 증권사들과 별개로 짚어져야 할 부분이 있다.
시장관리자의 '무책(無責)' 혹은 '무책(無策)'이다.
스캘퍼와 증권사가 노름꾼이었다면 멍석을 깔아놓은 게 거래소이다. 문제가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대책'을 몇가지 내놓기는 했지만, 수백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올리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판을 완전히 뒤흔들거나 뒤엎을 이유가 있을 리 없다.
물론 선진 시장의 주요 거래시스템에서도 전용선을 내주는 것은 일상화 된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선진 거래소 역시 눈앞의 돈 앞에서 자유로울순 없다. '쟤들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시장감독의 최종책임을 지고 있는 감독당국도 '無' 계열의 예외는 아니다.
언론에 대고 "진작부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이제 와서 말하는 건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치(無恥)'의 소치이다.
무더기 기소가 '무리'이든 '순리'이든 한국 증시는 검찰 덕에 ELW 시장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필요한 시장인지, 감독 당국과 시장 관리자가 진작에 판단했어야 할 일이다. 혹시라도 법원 판결과 시장 추이를 지켜보고 나서 정책적 판단을 내리겠다고 한다면, 또 한번의 직무회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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