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돕는 '눈 밝은 천사들(엔젤투자자)' 10년새 29000명→800명 사실상 없는셈

머니투데이 유병률 기자, 기성훈 기자, 이현수 기자 | 2011.06.30 06:00

[창간 10주년 기획] 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3회> '엔젤 투자자' 키우자

2007년만해도 아이디어 뿐이었던 앤써즈는 현재 연매출 35억원의 동영상검색 벤처기업으로 성장했다. 가능성을 알아본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가 3억원을 투자하고 국내외 개발인력과 벤처캐피탈을 연결해준 덕분이다. 엔젤투자자가 초기기업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김길연 대표(가운데)가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벤처창업요? 돈 많은 부모가 있거나 아니면 돈 있는 친구가 있거나, 둘 중에 하나도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 좋아도 힘들어요."
게임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인 서모씨(27)는 최근 한 엔젤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기까지 지난 5개월 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수십 차례 투자자를 찾아 다녔지만 완성품도 없는 자신에게 선뜻 돈을 대겠다는 사람도, 사업을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창업을 준비했고 지난해에는 해외 인디게임대회에서 입상까지 했지만 말이다.

초기기업이 홀로 설 때까진 품어서 키워줄 천사들이 필요한 법. 하지만 이런 엔젤투자자들이 종적을 감추었다. 중소기업청에 등록해서 활동중인 엔젤투자자는 2000년 2만8857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784명으로 줄었다. 10여년간 2만8000여명의 천사들이 사라져버렸다. 서씨 말처럼 친구와 친척이 거의 유일한 엔젤투자자가 돼버린 셈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따지면 애초부터 한국에는 엔젤투자자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엔젤투자클럽 고벤처포럼의 고영하 회장은 "2000년 엔젤투자 붐의 실상은 '묻지마 투자'였다"며 "버블이 꺼지니깐 다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주식 투자하듯 벤처에 투자했으니 제대로 된 엔젤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고 회장은 "엔젤투자자는 창업가에게 공동개발자 등 인맥을 연결해주고, 경영에 대한 조언도 해주며, 상장할 것인지 대기업에 매각할 것인지 출구까지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초기 기업가들은 돈만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돈만 댄다고 천사가 될 수 없는 것. 그래서 실리콘밸리에서는 성공했던 창업가들이 정리하고 나와서 하는 게 엔젤투자자이다.


친구·친척 빼면 돈대주고 경영 조언해 줄 멘토 전무


아이디어 있어도 혼자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두손

벤처캐피탈·정부지원금은 너무 까다로와 그림의 떡

벤처캐피탈이 이런 역할을 해줄 수도 없다. 남의 돈을 펀딩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심사가 까다롭다. 운용기간도 길지 않기 때문에 투자대상은 주로 기업공개가 멀지 않은 기업들이다. 싸이월드 창업자인 이동형씨는 "밴처캐피탈이 성적증명서가 있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장학재단이라면, 엔젤투자는 돈도 없고 공부 방법도 모르는 학생을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벤처 투자를 위한 모태펀드를 만들면서 벤처캐피탈의 투자재원은 지난해 사상최고였지만, 정작 초기 창업가들은 투자 받기 힘들다고 아우성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엔젤투자를 대체할 수 없는 건 정부 창업자금도 마찬가지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올해 1조4000억원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매출실적이 없는 창업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설령 정부자금을 받아도 돈 이상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고, 부작용도 많다. 이희우 IDG벤처스코리아 대표는 "정부자금은 빚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들여지는 순간 야생의 생존본능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결국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기업을 초기에 알아볼 수 있는 '미다스의 손'부터 키워야 한국판 페이스북도 나올 거라는 얘기이다.

전문가들은 엔젤투자를 활성화하려면 이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출구부터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장까지는 통상 10여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대신 인수합병(M&A)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 엔젤투자클럽 서밋파트너스의 배인탁 대표는 "벤처캐피탈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이라면 한국의 엔젤투자는 하이어리스크 노리턴(초고위험 무수익)의 상황"이라며 "엑시트(출구) 시스템이 없어 투자해도 회수할 방법이 없는데 누가 하겠냐"고 말했다. 출구가 막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물이 들어올 수 없고, 초기기업은 가뭄에 목말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벤처 투자후 M&A를 통한 자금회수 비중이 90%를 차지한다. 한국은 지난해 4.9%에 불과했다.

문제는 M&A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아직 까칠하다는 것. '내 회사'라는 집착과 '목표는 상장'이라는 인식이 지나치게 강하다. 대기업에 매각하고 나오면 '실패한 경영자'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유호상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장을 하려면 수십, 수백 억원 매출이 나야 하는데 이건 쉽지 않다. 좋은 모델 만들어 매각하고 다시 새 회사 차리는 게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기업생태계가 선순환하는 길"이라며 "대기업은 유망한 벤처를 제 가격 주고 인수한다고 생각해야 하고, 정부는 엔젤투자자의 투자금과 회수이익에 대해 세제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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