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당 8만원짜리 '바지 사장' 이다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 2011.06.27 07:28

[김동하의 네이키드코스닥]

'바지 사장님 모십니다
조건 나이 35세 이상, 등급 상관없음. 하지만 대출이나 금융권 연체 있으시면 불가합니다. 통신쪽 연체는 가능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쪽지나 연락주세요. 010-XXXX-XXXX'입니다'

네이버 한 대출 도우미 카페에 올라온 글입니다. '바지사장'은 실제 업주나 경영권을 행사하는 사람 뒤에 숨은 채 명의만 빌려주거나 경영활동의 '대리'업무만 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업주나 전주는 뒤에 숨어서 바지사장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떠넘기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형태죠.

'바지사장'이라는 어원은 동사 '받다'의 명사형인 '받이'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살받이'나 '총알받이'처럼 날아오는 화살이나 총알을 막으려고 앞에 내세우는 사람이나 군대처럼 민형사 책임, 질책과 비난 등 위험을 대신 떠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죠. 바지는 '받이'의 구개음화 현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바지사장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이야기'사건으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실제 업주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당 15만원, 단속시 조사 횟수당 200만~300만원, 벌금 대납, 형사처벌에 대한 대가 등을 조건으로 고용된 점이 검찰에 적발됐기 때문입니다.

위의 카페 게시물과 마찬가지로 바지사장을 고용하는 측에서는 일반적으로 단속망에 걸리더라도 구속은 면하도록 전과가 없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호적에 '빨간 줄'도 불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겁니다. 만일 구속될 경우에도 실제 업주를 실토하지 않게끔 변호인을 선임해주고 추가 대가를 보장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지사장이 실제 업주인 것처럼 종업원을 고용해 게임장을 관리하고, 단속 시엔 위조된 영업장 임대차계약서 등을 제시하며 자신이 업주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코스닥 시장에서는 이 '바지사장'이 전주나 사채업자에 고용돼 경영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등장했습니다. 젊은 바지사장 중에는 심지어 수억원의 '대가'를 받고 횡령사건의 모든 책임을 떠맡는 '철창 대행업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관련업계에서는 특히 경영권 변경이 자주 일어나는 문제의 한계 기업의 경우, 이 바지사장들이 사채업자에 고용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정체불명의 지위인 '경영지배인'의 형태로도 많이 진출했다고 합니다.

검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상장사 바지사장의 경우, 어느 정도 실권을 갖고 있는 CEO형 바지사장인지, 아니면 명의만 빌려준 진짜 바지사장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특정한 패턴들이 있다고 합니다.

명의만 빌려주는 진짜 바지사장은 소득세 3.3%기준을 면하는 8만원까지 일당을 받는다고 합니다. 일 8만원, 월240만원 이하로 벌게 되면 소득세 원천징수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의료보험, 건강보험 등 납부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또 회사차를 탔느냐 안탔느냐에 따라서도 바지사장을 구분하는 기준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회사가 돈을 내는 차를 타고 다닐 경우, 진짜 '받이(바지)'라고 보긴 어렵다는 얘깁니다.

법인카드를 쓸 수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법인카드를 쓰면서 어느 정도 경영에 참여하는 CEO형 바지사장의 경우, 처벌시에도 이름만 빌려준 바지사장보다 무거운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퇴출대란이 빚어지면서 증시에서 바지사장의 존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앞으로도 죄와 책임을 대신해주는 바지사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표이사는 이사회를 장악한 최대주주가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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