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게이츠가 극찬한 기술도 창업엔 실패했다, 왜?

머니투데이 유병률 기자, 기성훈 기자, 이현수 기자 | 2011.06.23 06:00

[창간 10주년 기획] 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2회> 벤처 열기 다시 불붙이자

벤처의 꿈을 키우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열정은 2000년대 초 벤처 선배들보다 더 진지하다. 대한민국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서울대 벤처네트워크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 20일 회의를 하고 있다. 올해 이 동아리에는 지난해의 2배인 40여명의 신입회원이 지원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난 1일 서울대에서는 이 대학 창업동아리 벤처네트워크 주최로 장병규(39) 네오위즈 창업자의 강연회가 열렸다. "김연아를 보세요. 멋진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겠습니까. 벤처도 마찬가지에요. 어떨 때는 미쳐야 합니다." 강연회는 3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50여명 학생 가운데 자리를 뜨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장 대표님, 빚이 몇억씩이나 생기면 어떻게 수습하나요?" "저도 한번 크게 망했거든요. 다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서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강연회가 끝난 뒤 만난 장 대표의 첫마디는 "우리 때와는 완전 다른 것 같아요"였다. "훨씬 진지하고 전문적입니다. 저희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아직 소수이기는 하지만, 한번 해보고 안되면 두 세 번이라도 (벤처 창업에) 도전할 친구들입니다."


지금 20대는 수십, 수백 번씩 취업원서를 써도 번듯한 기업에 취업하기가 어려운 상황.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취업 대신 벤처 창업의 꿈을 키우는 청년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학마다 창업동아리가 생기고, 20대가 설립한 신설법인도 늘고 있다. 2000년대 초 벤처 붐 이후 10여년 만이다. 하지만 이들이 벤처에 미치기에는 여전히 척박한 환경이다. 창업 인프라도, 지원 시스템도 열악하다. 나서서 키워주는 창업 선배들도 아직은 적다. 머니투데이가 만난 청년 창업가들은 할말이 많았다. 이들은 "창업초기 만큼은 사회가 위험을 조금만 덜어달라"고, "선배들이 제대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빌 게이츠 극찬에도 창업의 꿈은 좌절
세종대의 컴퓨터 동아리 '엔샵605'은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최한 세계 대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에서 2등을 했다. 빌 게이츠도 이들의 시연을 관람하고 "훌륭하다. 없어져서는 안될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이들이 선보인 제품은 외부 음성신호를 문자로 바꾸고 이 문자를 다시 진동으로 변환시켜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전달하는 특수 장갑이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당시 팀원이었던 임병수(29)씨는 "상용화를 위해 수많은 시간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투자자가 없었다.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걸 지원하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팀원들은 기업체 전산실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임씨는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상용화를 하려면 투자가 필요하고, 회사를 운영하려면 노하우가 필요한데 투자 지원도, 교육시스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기술은 있는데 경영을 몰라 속 탄다
태양광제품을 만드는 송상근(26) 쏠라사이언스 대표는 2009년 창업 초기 때만 해도 무작정 기업인들을 찾아갔다. "제가 전공이 전기공학이라서 재무나 마케팅 지식이 전무했죠. 하는 수 없이 신문에 나오는 벤처 기업인들을 찾아갔습니다. 만나줄 때까지 무조건 기다렸죠.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그런 식으로 배웠습니다." 덕분에 1000만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지금 직원 20명에 기술연구소도 두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도 80억원에 달한다. 그는 "경영을 가르쳐주는 멘토만 있었어도 더 빨리 성장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바럽(VARUP)의 박승복(28) 대표도 "창업 선배의 조언만 있었어도 두 번씩이나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재학 시절 두 차례 회사를 차렸다가 실패한 뒤 최근 재기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시장 흐름을 못 맞췄던 겁니다. 다 경험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인 경영교육과 창업 선배들의 멘토링이 중요한 것. 이니시스 창업자인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창업초기에는 그 단계에 맞는 독특한 경영이론이 있는데 이는 벤처를 성공시켜봤던 사람이 가장 잘 안다"며 "선배들이 후배들을 도와줘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대회서 수상했지만 BM지원 받지못해
경영멘토 부족…대기업 가로채기도 문제

한두번 실패로 재기불능, 재도전 장치 필요



◇기껏 개발해놓으면 대기업이 가로채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인 번개장터를 개발해 지난해 10월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한 장영석(30)씨는 등록 직후 대기업들로부터 인수합병(M&A)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조건이 터무니없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자 이들 대기업은 똑같은 앱을 곧바로 만들어 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위치정보를 이용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술을 개발중인 벤처기업 우만지의 황희순(38) 대표도 "2004년 회사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기술이 초기 단계라 상업화를 위해 대기업과 협의를 많이 했다"며 "그런데 대기업들은 투자를 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기술만 가져가 독자적으로 만들려 해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애플은 벤처 생태계를 만들지만, 한국 대기업은 벤처 생태계를 없애고 있다. 새싹(벤처)이 생겨나도 밟아버리는 대기업 중심구조를 바꾸어야 벤처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벤처실패가 인생실패가 되지 않도록"
청년 창업가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한번의 실패가 인생실패로 끝나는 것이었다. 2008년 액정표시장치(LCD) 장비업체를 설립한 이모씨(32)는 이듬해 부도가 나서 폐업을 했다. 담보가 없어 연대보증을 섰던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고 아직도 신용회복 중이다. 이씨는 "한번 무너진 사람은 더 이상 지원이 없더라"며 "다시 일어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KAIST를 휴학하고 지난해 소프트웨어업체를 설립한 변규홍(25)씨도 "실패를 통해 배운다고 하지만 실패 가능성에 늘 불안하다"며 "한 두 번 실패하면 재기불능이 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고 말했다.

올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추진중인 청년창업 지원예산은 총 14개 사업에 1,120억원. 그러나 양현봉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업교육이 획일적이고 컨설팅 지원 등 사후관리가 부족하며 무엇보다 창업실패에 따른 재도전 장치가 미흡하다. 청년 창업가들 수요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성훈 이현수 기자 b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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