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거품 너무 끼었다'.. 가격 폭락 전조?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 2011.06.21 14:12

천정부지 가격에 시장 혼란… "中에 살고 中에 죽네"

보르도 와인 유통업체 바리에르프레르는 지난주 프랑스 마고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2등급 와인 '샤또 로장 세글라' 2010 빈티지에 대한 판매를 전격 보이콧했다.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도무지 유통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명품업체 샤넬이 소유하고 있는 로장 세글라는 지난주 선물시장(앙프리메르)에서 병당 84유로(약 13만원)의 유통가격에 거래됐다. 이는 역대 최고가였던 지난해 60유로보다 무려 40%나 급등한 것이다. 바리에르프레르는 "와인 생산업체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잘 알지만 완전히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올해 앙프리메르에 나온 보르도 2010 빈티지는 역대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으면서 일찌감치 사상 최고가 경신이 예상됐다. 문제는 투자자들과 소비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값이 올랐다는 것.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르도 와인을 매입하는 베리브러더스&러드(BBR)도 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현재까지 이 회사의 2010 빈티지 판매량은 지난해 2009 빈티지의 절반 수준인 4만 상자에 그치고 있다. 사이먼 스테이플스 이사는 "지난해에는 1억1000만 파운드어치를 팔았지만 올해 판매 규모는 절반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와인 컨설턴트 수지 드 파올리스는 "2010 빈티지는 1~2년 전과 같은 수준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달이면 앙프리메르가 문을 닫기 때문에 다급해진 유통업체들은 최근 마진을 포기하고 와인을 헐값에 팔고 있다. 최근 런던인터내셔널빈티지거래소(Liv-ex) 설문 조사에 따르면 와인상 59%가 지난해보다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와인상들은 2010 빈티지 주문이 지난해 2009 빈티지보다 10% 줄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같은 시장의 혼란을 고급와인 가격에 거품이 쌓인 탓으로 봤다. 역대 최고의 와인이 될 수 있었던 2010 빈티지가 투자자들과 바이어들의 거품 우려에 선물시장에서 판매량이 전년도의 절반에 그치며 굴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Liv-ex100지수 추이
고급와인이 투자상품으로서 주목받은 지난 10년간 최고급 와인 가격은 연평균 상승률이 15%에 달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지난 2008년 말 잠시 주춤했지만 2009년부터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정도로 고급와인 시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불안한 금융시장과의 연관성이 적고 리스크가 낮은 것이 불확실성의 시기에 투자자들을 와인시장에 끌어들였다. 게다가 투자수익률도 높았다. 지난해의 경우 100개 고급와인으로 구성된 가격지수인 Liv-ex100지수는 전년 대비 40% 급등했다. 최고급와인들로 구성된 Liv-ex50지수는 57%나 올랐다. 모두 원유와 금 등 다른 상품들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이었다.


요즘에는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와인 투자가 선호되기도 한다. 크리스 스미스 와인인베스트먼트펀드 펀드매니저는 "와인을 금보다 나은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보는 투자 흐름이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은 와인과 같은 유형 자산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급와인 시장의 성장과 지속적인 가격 급등세는 단연 중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가와 개인의 부가 모두 팽창하고 있는 중국이 투자와 소비 면에서 와인시장을 든든히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이다.

가격 거품 논란도 중국과 연결된다. 중국 수요의 전망에 따라 현재 시장 상황이 거품인지 아닌지가 판단된다. 저스틴 깁스 Liv-ex 이사는 "중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한 고급와인 투자는 수익을 낼 것"이라며 "예상할 수 없는 중국발 쇼크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망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또 와인 유통업체 스티븐브로웨트의 파 빈트너즈 이사는 "사람들이 단지 투자를 위해 와인을 산 것이라면 거품이 생겼겠지만 중국 수요의 대부분은 소비용 와인으로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도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버블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록 와인시장에 거품이 가득한 것은 아닐지라도 거품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은 이미 보다 안전한 길을 찾기 시작했다. 최근 와인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로 중국 등 아시아 투자자들과 바이어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의 와인이나 저평가됐던 빈티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1등급(퍼스트 그로스) 바로 밑의 '슈퍼 세컨드' 등급으로 이동하고 있다. 1등급인 프리미에 크뤼 보르도 와인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치솟은 탓이다. FT는 지난 1년 동안 고급와인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경향은 아시아 바이어들로부터 저가 빈티지 수요가 증가한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이번 앙프리메르에서 2010 빈티지를 외면한 투자자들이 대신 다른 잠재적 투자가치를 지닌 빈티지에 주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다수 전문가들은 2005 빈티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1996 빈티지와 1990 빈티지까지도 주목할 만한 대상이다. 저스틴 깁스 Liv-ex 이사는 "상대적으로 값싼 2005 빈티지는 수년 동안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던 와인"이라며 "대부분의 와인이 2008년 피크점 아래에서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2005 빈티지를 사는 것은 좋은 투자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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