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 기반의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온다

머니투데이 대담=오동희 바이오헬스 부장 기자, 정리=배준희, 사진 이명근 기자 | 2011.06.16 07:00

[창간 10주년 기획/나는 아날로그다(1)]7년 전 디지로그를 내다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이명근 기자
"익명의 가면 무도회는 끝났다."

7년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인 '디지로그' 시대를 예측했던 한국의 대표 석학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 79)는 디지털이 기반이 된 익명성의 정보화 사회가 막을 내리고 인간과 자연, 생명의 아날로그가 접목되는 시대가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직 구한말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울 정동에 자리 잡은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실에서 지난 10일 오전 만난 이 교수는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래전에 예견했던 디지로그 시대의 본바탕이 드디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IT 기반의 정보화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아날로그의 중요성과 가치가 더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한 디지로그가 핵심 컨셉이 되는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문을 열고 있다며 한국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도 잊지 않았다.

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를 넘어 디지로그 시대로 접어든 지금, 왜 인간은 다시 아날로그로의 자원을 재발견하게 되고, 디지로그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도래할 지를 들어봤다.

-산업화와 정보화, 디지로그 시대에 대해 앞서 예측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다시 아날로그에 주목하는가.
▶리먼브라더스 충격 이후 사람들은 사회적 실체성이 없는 허구로서의 '화폐', 그리고 신체성을 떠난 디지털의 가상현실 속에 빠져 있는 공동환상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환경파괴적인 산업기술을 바이오 미미쿠리(생체자연기술)와 신체성의 회복을 통한 생명력의 회복 등 아날로그 자원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일련의 정보 미디어의 단말기 개혁으로 디지로그파워가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키보드와 전기 코드에서 벗어난 모바일 기기들은 인간의 신체성과 밀착함으로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인터페이스에 놀라운 혁명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한편 주커버그의 페이스북이 몰고 온 SNS 역시 디지로그의 파워를 보여준다. 현재 7억~8억명이 가입돼 활동하고 있는 페이스 북은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지닌 '나라'로서 부상했다. 왜냐하면 종전의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익명의 집단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가면무도회와도 같이 얼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냈지만 실명위주의 정책을 들고 나온 페이스 북은 아날로그의 인간관계를 그대로 사이버 사회와 접합시켰다.

19세의 하버드 신출내기 소년은 종전의 인터넷 세대와는 전연 다른 발상으로 즉 디지로그 발상으로 가상과 현실공간이 하나로 합쳐진 사회의 네트워크를 창조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이튠의 음악파일을 올리는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을 결합함으로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의 디지로그 발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키보드를 터치스크린으로 바꾸는 순간 컴퓨터와 사용자의 몸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게 된다. 즉 사이버 세계와 아날로그의 실사회를 접합시키는 인터페이스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면서 지금 미디어들은 모두 디지로그 빅뱅을 맞이하게 됐다. 뿐만 아니다.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3를 제압했던 닌텐도의 위(Wii)의 게임기 역시 센서 바를 이용해 아날로그의 신체성과 비트로 구성된 사이버 세계를 연동시키는 새로운 디지로그 방식의 혁명을 출현시켰다. 디지로그란 단순히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의 감성을 입히는 그런 잔재주가 아니라 인간과 컴퓨터사이를 바꿔놓는 혁명인 것이다.

ⓒ사진=이명근 기자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결합한 디지로그의 핵심은 무엇인가.
▶신체자원인 세포와 IT의 비트(Bit)로 만들어진 세계, 이 두 가지를 서로 어떻게 매칭해서 인터페이스 혁명을 하느냐가 디지로그의 핵심 문제다. 이제는 익명의 바다에서 펼쳐졌던 '가면무도회'인 IT 지식정보화 시대는 끝나가고, 디지로그를 중심으로한 생명자본시대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생명자본은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感)을 살리고, 자연에서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요즘은 어느 분야든 전문가들이 기계에 의존하면서 감을 잃어버렸다. 이를 되찾기 위해 자연과 아날로그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옛날에는 벌집에서 꿀을 착취해 왔지만 이제는 반대로 꿀벌의 지혜를 배워 산업기술에 사용해 돈을 번다. 하니컴 구조라고해서 육각형의 벌집 구조를 배워 항공기나 우주선의 구조물을 만든다. 심지어 축구 골네트도 옛날에는 사각형모양이었는데 지금은 육각형으로 짠다. 벌집에서 튼튼한 구조물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에서 오는 지혜를 자본시장에 이용하는 것, 이게 생명자본주의다. 이게 금융이랑도 직결되는 것이다. 이제는 이걸 뛰어넘어야 금융이 작동해서 죽은 돈이 산돈으로 바뀐다.

IT기술도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안 넣으면 안 된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 전부 디지로그로 가고 있다. 거의 10년 전쯤 디지로그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이제는 본바탕이 다 됐다.

-아날로그인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흰개미는 낮에는 엄청나게 덥고, 밤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혹독한 사바나에서 독창적인 개미집을 지어 지혜롭게 생존하고 있다. 그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지식이 바로 자연의 지혜다. 그걸 이용해서 짐바브웨 수도에다가 도시를 짓고 있다. 연잎에 물이 떨어지며 구르는 현상을 연구하면, 방수벽돌을 만들 수 있다. 공해도 없고 사람들이 청소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모기가 인간을 무는 원리를 이용해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주사를 만든다. 물총새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먹잇감을 낚아 챌 때, 부엉이가 빠른 속도로 쥐를 잡을 때 접근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 소리를 산란시켜 하는데 이것을 연구해서 그대로 이용하면 부가가치가 엄청나다. 풍력발전을 하려면 바람개비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안된다. 그런데 물총새나 부엉이의 원리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풍력발전을 산꼭대기에서 우리 주변으로 끌어내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렇게 생명의 기술을 쓰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온다. 물질자본이랑은 비교가 안된다. 이런 생명자본을 기반으로 한 것을 해야 한방에 외국기업들을 이길 수 있다. 반도체 기술 갖고는 금세 한계가 온다.

-그동안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집어내셨는데, 복잡 다변화한 사회에서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예이츠는 자신을 '미래의 입법자'라고 했다. 소설이나 평론이나 예술은 항상 시대보다 앞서간다. 공상과학은 이미 인간이 우주에서 놀지 않나. 그런 시와 같은 창조적 상상력으로 현실을 보면 여러 가지 징후를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비 한 마리에서 봄이 오고 나무 잎 하나 지는 데서 천하의 가을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전공이 창작이요 기호학이다. 바둑의 원리를 알면 옆에서 훈수를 둘 수 있으니까. 일종의 기호학으로 현실을 읽으면 전통에서부터 어떻게 근대화가 됐나 등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소련이 망하면서 세계 갈등이 끝났다고 할 때 새뮤얼 헌팅턴 같은 사람은 혼자 문명이 충돌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슬람과 미국, 아시아권에서 문명 충돌이 일어난다고 봤다. 그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아날로그의 자원을 디지털자원으로 옮기는 것이 IT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그것들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리는 곳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징후를 읽은 것이다.

사실 나는 나물 캐는 채집시대에서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지식 정보화시대에서 이제는 탈 정보화의 디지로그 시대에 이르는 전 문명과정을 살아왔다. 이것은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본만 해도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이미 산업사회에 진입하고 있었다.

ⓒ사진=이명근 기자
-요즘 다양한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미디어시장도 격변기를 겪고 있다. 디지로그 시대에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보는가.
▶지금은 인쇄매체도 있으면서 타매체하고 관련성을 맺는 트랜스 미디어 시대다. 지금은 우세한 주류 매체에 광고가 쏠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각 미디어를 횡단하는 광고형태로 변한다. 이 말을 '주류 매체다', '구 매체다'하는 매체의 일방적 지배가 아니라 각기 자기 특성에 따라 다매체를 함께 공유하는 시대로 진입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스마트 폰이나 태블릿PC 등 휴대성이 강한 미디어가 돋보이는 현상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이 상식이 되는 시대에는 여러 기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으므로 다매체의 트랜스 미디어로서의 특이한 현상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스마트 시대가 오자마자 트랜스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결국 콘텐츠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한 콘텐츠로 여러 미디어에 맞도록 제작해 뿌리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대형 입체영화 간에서 보든 아바타를 스마트 폰으로 보려면 콘텐츠를 각기 미디어로 재창조 재순환시키는 기술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만화로도 만들거나 전자 게임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트랜스 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 IT기업들이 나름 성공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로그 시대에도 성공할 것으로 보나.
▶노키아를 보면 디지털 기술만 갖고는 힘들다는 게 분명하다. 아날로그적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 외에는 색감이 없는 수준이다. 스티브 잡스가 색깔로 먹고 사는데 우리에게 그런 색깔이 안 나온다. 이제는 색감시대인데 이런 시대가 왔을 때 우리는 뒤처지게 된다.

우리는 과거 매슬로가 이야기했던 배부르고 발 뻗고 사는 생리적 욕구단계는 지났다. 욕망의 최정상인 자기실현 단계로 가야한다. 취미나 매력이나 보람, 이런 것을 못주면 상품이 안 팔린다. 이런 걸 하려면 세끼 밥만 먹으면 된다는 산업화, 피땀 흘린 민주화, 이런 거랑 팔짱을 빼야한다. 아직도 산업화 세력이나 민주화세력이니 하는 것을 '팔아먹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죽어있는 것에 생명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 자본주의다. 창조 클래스의 시대가 온다. 못 사는 사람도 창조력 있으면 부자가 되고 부자라도 이것이 없으면 죽는 그런 시대. 화이트, 블루, 골든칼라를 넘어서 이제 '그린칼라'의 시대다.

생명력의 그린 칼라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는 게 내 결론이다. 앞으로 금융도 생명처럼 살아있는 돈을 써야한다. 사람한테 투자하라는 것이다. 교육, 문화, 사랑 등 그게 생명력이고 창조력이다.

미국이 별 볼일 없어보이다가도 갑자기 구글이 나오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도요타보단 구글을 닮아야한다. 제조업도 튼튼해야 되지만 새로운 창조 력을 키워내야 한다.

스스로를 '크리에이티브 어답터'로 부르는 이 교수는 요즘도 갤럭시S나 갤럭시탭,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다양한 정보기기를 활용하고 있다며, 배터리의 문제점과 앱의 조악함 등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사진=이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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