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펀드는 없다

머니투데이 임상연 기자 | 2011.05.04 15:13

[임상연의 머니로드]

"에이~ 좀만 더 쓰지!" 정부의 '만5세 공통과정' 시행안을 듣고 아내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혜택을 받으려면 아직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아쉬웠던가 보다. 하지만 나중에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게 어딘가.

그래서 "염치없는 소리하지 말고, 당장 만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려봐"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더니 "그럼 매달 20만원씩 더 벌어와!"란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무슨 억지춘양인가.

각설하고, 내년부터 만5세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은 조금은 짐을 덜게 됐다.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만5세 자녀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가정은 소득에 상관없이 교육비로 월 20만원씩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 현재는 소득분위 70% 이하 가정만 월 17만7000원씩 받고 있지만 액수도 늘어나며 대상도 전 계층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지원액수도 조금씩 증가해 2016년에는 1인당 30만원까지 확대된다고 한다. 사실상 정부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 대부분을 지원해주는 셈이다. 만4세 이하 자녀를 둔 부모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박수칠 일이다.

하지만 '만5세 공통과정'이 발표된 이날 여의도 펀드시장 곳곳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정부당국에 수년째 제안했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어린이펀드의 세제혜택 문제 때문이다.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며 어린이펀드의 세제혜택을 반대하던 정부가 수조원의 예산이 드는 파격적인 어린이 보육정책을 내놨으니 야속할 법도 하다. 그것도 여당의 4.27 재보선 참패와 어린이날 사이에 말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 술자리 민심에선 이번 조치가 내년 총선용 '정치쇼'로 버무려져 안주거리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만5세 공통과정'의 의미까지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어린이에 대한 교육 기회균등과 조기 인적투자로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조달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지 여부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이에 따른 세수감소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부모 대신 정부가 쏜다'는 식의 어린이 보육, 교육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우려하는 것이다.

펀드시장에서 어린이펀드의 세제혜택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고, 가계 스스로 자녀 보육 및 교육에 대한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선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처럼 어린이펀드의 장기 적립식투자를 유도할 당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경우 어린이가 출생하면 의무적으로 어린이펀드(CTFㆍChild Trust Fund)에 가입하도록 하고 1인당 250파운드의 보조금(빈곤층은 500파운드)과 세금 혜택을 주고 있다. 어린이펀드는 18세까지 유지해야 하는 데 18세 이후에는 ‘개인저축계좌(ISAㆍIndividual Savings Account)’라는 또 다른 세제 혜택 플랜에 가입할 수 있다. 이 플랜 역시 세제 혜택을 통해 국민이 장기간에 걸쳐 펀드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는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나라는 그저 나라일 뿐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할 수 있지..." 정부가 모든 국민을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80살이 된 '어린이날'에 꼭 물어봐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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