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新' 값은'辛'… 자취생, 신라면블랙 먹다

머니투데이 류지민 기자 | 2011.04.15 17:02
늦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만원버스에서의 시달림보다 더 힘든 건 허한 속이다. 구내식당의 식상한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야식으로 피자를 우겨 넣은 뱃속이 느글거린다. 얼큰한 라면국물 생각이 간절하다. 열두시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이미 발걸음은 동네슈퍼로 향한다. 게임을 하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자제력 없는 독신자들을 대상으로도 신데렐라법 도입이 시급하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라면코너 앞에 선다. 오, 이 다양성의 풍요로움이라니. 먹고 싶은 라면을 고를 수 있는 자유, 원하지 않는 라면을 먹지 않을 자유.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라면을 위한 인간의 자유의지여 만세!

지금껏 숱하게 먹어온 라면이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먹을 음식이지만 선택의 순간은 늘 심각한 갈등을 동반한다. 망설임의 기로에서 새로운 녀석이 눈에 띈다. 며칠 전부터 이런저런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신라면 블랙'이다. 빨갛던 포장지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고급스러움을 표방했다고 하는데 일단 겉모습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음식의 본질은 항상 맛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맛없는 음식은 쳐다볼 가치가 없어지는 법. 그럴듯한 포장지만큼 맛도 과연 만족스러울지 궁금하다. 한 사람의 라면애호가로서 '신라면 블랙'을 망설임 없이 집어 든다. '오늘밤은 너다!'

'신라면'과 비교해 살펴보니 우선 중량이 늘었다. '블랙 신라면'은 130g으로 '신라면'보다 10g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열량도 505kcal에서 545kcal로 늘었다. 배고픈 사람에겐 희소식이요, 배나온 사람에겐 든든하겠다.

봉지를 뜯으니 색다른 구성이 눈에 띈다. 건더기 스프와 분말 스프는 동일하지만 '우골설렁탕분말'이 추가됐다. 스프 겉면에 쓰인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을 담았다는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400원에 즐기는 설렁탕이라니, 기대가 점점 커진다.

첫 시식이니만큼 최대한 제시된 조리법에 맞게 조리했다. 순수한 원형의 맛을 감상하기 위해 계란, 대파, 치즈 등 일체의 추가재료도 넣지 않았다. 정확히 4분 30초를 끓였다.

면발은 기존의 신라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국물이 확연히 다른 맛을 낸다. '신라면'이 얼큰한 매운맛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신라면 블랙'은 부드럽고 진한 사골국물 맛이 매운맛을 중화시킨다. 얼얼하지 않은 부드러운 매운맛이다.


'우골설렁탕분말' 하나로 '신라면'과는 완전히 다른 맛을 만들어 냈다. 자칫 잘못하면 겉돌 수 있는 라면국물과 사골 맛을 잘 조화시켰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어울리는 정도를 잘 잡아냈다. 건더기도 여타 라면에 비하면 실한 편이다. 소고기, 파 등의 건더기 크기가 커졌다.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고기를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니 땀이 흐르고 있다. 어느새 느글거리던 뱃속이 개운해졌다. 한 봉지 라면에 '원기회복에 좋은 보양식사'라는 광고문구가 얼마나 적합할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맛에 있어서는 여타 라면과 차별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라면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하는 서민들에게는 두 배나 차이나는 가격에 선뜻 손을 뻗기 쉽지 않을 것이다. 추가된 사골스프와 커진 건더기에 700원이라는 라면 하나의 값어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신라면 블랙'을 접한 소비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블로거 '음주가무'는 "기존 신라면과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도대체 비싼 이유를 모르겠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낸 반면, '무상'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블로거는 "가격 때문에 손쉽게 사먹을 수는 없겠지만, 라면 자체의 맛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맛에 대한 의견뿐만 아니라 '신라면 블랙'의 패키지 디자인을 분석한 글도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품의 대한 호불호를 떠나 농심의 새 라면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라면 블랙'은 정부로부터도 요주의 대상이다. 최근 물가상승과 맞물려 제품의 비싼 가격이 정부의 물가관리 대책의 표적이 된 것이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농심의 '신라면 블랙' 출시를 놓고 "리뉴얼이나 업그레이드를 통한 제품 가격인상에 편법이나 불공정행위 여부가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농심의 시도는 새로운 형태의 가격인상일까, 라면의 업그레이드일까. 답은 공정위의 잣대가 아닌 소비자의 입에 달려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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