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로 변한 원전 20km 이내, 사람은 없고 소만…

머니투데이 홍찬선 기자 | 2011.04.05 09:16

몸이 불편한 노인과 부처님 모시는 사람들은 ‘피난지시’에도 남아

사람과 자동차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가끔씩 고삐 풀려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한 무리의 소가 아스팔트 길을 어슬렁거릴 뿐이다. “3주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라고 지방의회 부의장의 말이 눈물로 다가온다.

방사능 피해가 우려되 '피난지시'(원전에서 20km 이내)와 '옥내피난'(원전에서 20~30km)이 내려진 지역. 나라하마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km 이내여서 피난지시로 대부분의 사람이 살던 집을 떠났다. ▲출처=아사히신문

후쿠시마현 나라하(樽葉)마치. 마치의 대부분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km 안에 있어 ‘피난지시’ 권내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마치에 살던 사람들은 정든 땅과 집을 버리고 피난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몇몇은 쓰나미에 휩쓸려 소중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거리에는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집에서 굶어 죽느니보다 돌아다니는 게 낫겠지…’하며 풀어놓은 소들만이 텅빈 거리를 애처로이 돌아다니고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 지 25일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24일째를 맞는 나라하마치. 인적이 끊긴 현장을 아사히신문의 보도에 따라 소개한다.

국가의 ‘피난지시’를 어기고 나라하마치에 남아 있는 사람은 현재 14세대 19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야마우치(61) 나라하마치 의회의 부의장은 이들을 찾아다니며 피난하라고 설득하는 것이 요즘 주요한 일과 중 하나다. 그들의 집 전화는 전선이 끊겼는지 불통이고 휴대전화도 되지 않는다. 야마우치 부의장이 3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것이 외부와의 유일한 접점이다.

90대의 노모를 10년이나 보살피고 있는 한 부부는 야마우치 씨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노모를 모시고 움직이면 돌아가실 것이다. 절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노모는 오랜 기간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다. 지진 전에는 인근의 히로노(廣野)마치에 있는 병원의 의사가 왕진해 주었다. 하지만 히로노마치 주민도 다른 곳으로 피난 갔기 때문에 그 의사도 함께 그쪽 피난자들을 돌봐주기 위해 왕진을 올 수 없는 실정이다. 필요한 약은 야마우치 부의장이 피난소에서 챙겨 갖다 준다.


부부는 거의 밖에 나오지 않는다. 야마우치 씨가 가져다 준 하얀 방호복을 입고 집 옆에서 쓰레기를 태울 때만 잠깐 밖에 나온다.

나라하마치에서 오래전부터 명가(名家)로 알려진 80대의 남성도 야마우치 부의장이 지키는 대상이다. 그 남자는 “집을 지킬 의무가 있기 때문에…”라며 피난지시에 따르지 않고 있다. 남성은 장남과 함께 살았으며 장녀도 부근에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피난지시에 따라 장녀는 지바현으로, 장남은 이바라기현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걱정되는 장남은 야마우치 씨에게 “이와키 시까지 마중갈테니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모시고 나와달라”고 애원하지만, 남성은 “부처님을 지켜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다.

야마우치 부의장에 따르면 이 마치에서 20km 이내 권역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은 90대 80대 70대가 각각 1명이고 나머지는 50~60대라고 한다. 남아 있는 세대는 모두 “아들의 몸이 약하기 때문에” “집을 비워두는 것은 안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피난하지 않고 있다. 야마우치 씨는 각 세대를 방문할 때마다 물과 식료품이 부족하지 않은지를 묻고 3일치를 남겨 놓는다고 한다.

야마우치 부의장 자신은 이와키 시내의 피난소로 지정된 초등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주민이 남아 있는데 모른 체 할 수 없다. 사무실이 마치의 외부로 옮긴 이상 주민들에게 피난하라고 설득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침 7시가 넘으면 피난소를 나와 나라하 마치로 가서 오후 3시 정도에 돌아오는 일을 매일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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