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건희 회장 말이 옳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더벨대표 | 2011.03.14 12:28
역설적이지만 극단적인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반대자들로 변한다. 그렇게 욕하고 반대하던 쪽에 어느새 자신이 서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우리는 자주 이를 확인한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전반부에는 '전봇대'를 뽑는 규제완화와 법인세 인하 같은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친기업 정책을 적극 펼쳤지만 집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확연하게 친서민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당의 참패로 끝난 지난해 6월의 지방선거가 분기점이었다.
 
그 결과 친기업이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보다 친서민과 상생, 공정사회와 동반성장을 부르짖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인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서민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정유사나 통신사 유통회사의 가격결정에까지 직접 개입한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상생과 공정사회 동반성장의 '종결자'라고 부를 만한 초과이익 공유제까지 주창하고 나선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대기업의 이익을 협력 중소기업에까지 나눠주자는 초과이익공유제에 이르면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그렇게 비판한 전임 김대중 노무현 정권보다 더 왼쪽으로 나아간 것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0일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흡족하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같다"고 말하며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자본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해서 파장을 일으켰지만 이 같은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편향적 변화를 감안하면 충격적인 말이 아니다. 당연히 할 말을 했고, 틀린 말은 더더욱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평소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경영자다. 웬만해선 칭찬도 하지 않는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서도 "만족이란 것은 없다. 어렵지만 2011년에는 더 흑자를 낼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 같은 이 회장의 독특한 화법을 감안하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을 받지 않은 것만 해도 오히려 후한 점수를 준 것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친기업'에서 멀어져 최근에는 '반기업'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이 회장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면 얼마나 낯간지러웠겠는가. 그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일갈한 이건희 회장에게서 기대할 말이 아니다. 따라서 청와대나 경제 관료들이 섭섭해 할 것도, 속을 끓일 것도 없다.
 
초과이익공유제 논란에 대해선 처음 이 말을 꺼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정치 멘토'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아주 정리를 잘해줬다. 그의 말처럼 초과이익공유제는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초과이윤이라는 개념 자체부터 모호하고, 산정도 할 수 없으며, 강제할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의 이익을 시혜적으로 협력 중소기업들에 나눠주면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반대로 약화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아니라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2600년 전 공자는 '주역'을 해설하면서 '글로는 말을 다할 수 없고, 말로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했지만 이건희 회장도 이번에 이를 절감했을 듯싶다.
 
그렇더라도 때로는 직설적이고 때로는 선문답 같은 그의 말을 가끔은 들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이 정도는 포용하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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