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국 건설산업에 남아있는 '王회장'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 2011.03.10 06:42

[故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해외진출 문열고 신뢰·가격 '무기' 쌓아

1975년 가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무모하다"는 주위의 비아냥 속에서도 일대 결단을 내렸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건설프로젝트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입찰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 중동 건설시장은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다. 입찰에 초청받은 기업은 미국, 영국,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국적의 9개사. 나머지 한 자리에 "어느 기업이 들어오냐"는 것은 이들 국가의 기업에는 안중에도 없는 얘기거리였다. 소위 '잘나간다'는 일본 건설사도 끼지 못했다.

그 자리를 현대건설이 차지했다. 당시 사우디 왕족들 사이에서조차 "현대건설이 공사를 따면 내 오른팔을 잘라라"고 호언할 정도로 현대건설의 수주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인 1976년 2월16일, 현대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따내며 세계 건설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수주금액은 우리나라 예산의 4분의1에 해당하는 9억3114만달러(당시 환율 4600원).

까다롭기로 유명한 기성금까지 챙기며 그 무렵 최악이었던 국내 외환사정까지 해결했다. '노가다'로 손가락질받던 건설업자가 외채 부도를 해결하는 구국의 장을 펼친 것이다. 지금은 우리 건설업체들이 제집 안방 드나들 듯 하는 중동 건설시장의 문은 이렇게 열렸다.

1984년 고 정 명예회장은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공사'로 여의도의 48배에 달하는 서해안을 간척했다. 물막이 마지막 시점 270m를 남기고 유속 약 6m/s의 빠른 물살로 토사가 유실되자 유조선으로 유속을 줄이고 토사를 매입했다.

일명 '정주영공법'으로 불린 이 공사기법은 미국 뉴스위크와 타임에까지 소개됐다. 건설을 종합산업·종합기술로 만든 그는 우리 건설산업의 신화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교훈으로 남아 있다.

↑해외건설 수주 1호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모습

◇"국내에 안주하면 안된다. 해외에 길이 있다"

1960년대 초반 4.19와 5.16 등 2차례의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정부는 기간산업 개발자금이 부족하자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일 처지가 못됐다. 발전소와 비료공장과 같은 플랜트는 선진 외국건설사들의 독무대였다.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결국 고 정 명예회장은 "해외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다"고 공표했다. 해외에서 글로벌 건설사들의 기술력을 배울 필요가 있고 둔화된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현대건설은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건설사가 해외에서 수주한 첫 공사로 기록됐다. 이어 제1차 석유파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달러를 벌기 위해서는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으로 가야한다"고 선언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1975년 이란 반다르 압바스 동원훈련조선소 공사를 수주한데 이어 곧바로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를 1억3000만달러에 따내며 본격적인 대형공사 수주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지금까지 전세계 50여 개국에 진출, 730여건에 달하는 공사를 수행하며 3월 현재 790억달러가 넘는 해외 수주고를 기록했다. 단일 기업으로 최초로 800억달러 수주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현대건설의 해외진출은 다른 건설사들을 자극했고 지난해 715억달러로 사상 최대 해외건설 수주고를 달성하는 시발점이 됐다. 지금도 국내 건설사들은 지속적인 건설투자 감소와 부동산경기 침체로 활로를 해외건설에서 찾고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건설시장 지배력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첫 해외공사였던 태국 파타니 나리티왓 고속도로 공사는 모험이었다. 경험이 없던 탓에 손해가 막대했다.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공사를 계속하는 것 주체가 무모하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고 정 명예회장은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며 고집스럽게 공사를 진행했다. 이는 해외건설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계기가 돼 동남아시아에서 각종 공사를 수주하는 밑거름이 됐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발주처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한번 눈 밖에 나면 해당 국가에서의 수주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건설사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발주처와의 신뢰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이후 대우건설은 1986년 미국이 리비아를 맹폭할 때에도 트리폴리와 벵가지에서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은 1991년 걸프전이 한창일 때 이라크에 진출한 건설사 중 가장 늦게 철수했다. SK건설은 2003년 전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미국의 이라크군 폭격 때도 현장을 고수했다.

올들어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은 리비아 내전사태에도 불구하고 79명이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공사 대금을 받기 위해 현장을 보전해야 하기도 하지만 위기가 닥쳐도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발주처에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란 사우스파 가스플랜트 4-5단계 전경
◇수주 경쟁력은 가격, 품질은 세계 최고

해외건설 초기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건설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었다.

부족한 기술력을 가격으로 뒤집고 특유의 성실성과 원가경쟁력으로 공기를 맞추는 것은 물론 발주처가 원하는 품질의 결과물을 제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결국 우리 건설사들의 역량으로 정립했다.

'20세기 최대 역사'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10억달러에 달했다. 입찰에는 현대건설은 포함한 세계적인 건설사 9곳이 참여했다.

현대건설은 가장 낮은 9억3114만달러를 써내 공사를 수주했지만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작업현장과 한국이 너무 멀어 원가가 천정부지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 정 명예회장은 한국에서 철 구조물, 콘크리트 등 모든 자재를 가져다 쓰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현대건설은 공사비와 공기를 절약했고 공사 품질에서도 발주처를 만족시켰다.

현대건설은 2005년 이란 사우스파에 당시 최대 규모인 총 26억달러 규모의 고부가가치 플랜트 공사인 초대형 가스 처리시설 공사를 단일 플랜트 공사로는 세계 최단기간인 35개월 만에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당시 이란 정부의 하타미 대통령이 "사우스파 전체가 완공될 때까지 현대건설은 절대 이란을 떠나서는 안된다. 이곳에 남아 나머지 공사도 모두 수행해 달라"며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지금도 우리 건설사들은 해외건설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무기다. 기술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낮은 가격을 써냈지만 다른 건설사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는 기술력과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플랜트의 경우 3개월 가량 공정을 단축하면 3~4%의 수익률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고 정 명예회장의 경험과 노하우는 현재 우리 건설사들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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