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번역오류를 처음 지적한 송기호(사진) 변호사는 이번 '번역오류'는 예고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송 변호사는 "번역 오류는 정부가 지나치게 성과나 실적에만 급급, 서둘러 일을 처리한 결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이날 외교통상부가 번역오류와 관련, 발표내용을 또다시 문제 삼았다. 외통부는 이날 오전 "EU측과 FTA 협정문 한글본의 일부 오류를 정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한·EU FTA 협정문 부속서 '7-다 최혜국 대우 면제 목록'. 영어본에는 "래칫(역진방지) 조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as it existed immediately before the amendment'(개정 직전에 존재하였던 조치의 합치성)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한글본에는 이 부분이 완전히 누락돼 있다는 게 송 변호사의 설명이다.
'래칫'(ratchet)이란 톱니바퀴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고 반대방향으로 돌지 못하게 막는 장치로, 자유무역협정에선 협정 상대국한테 새로운 규제를 할 수 없도록 못박는 것을 말한다.
송 변호사는 "이 문구가 포함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수입 개방 허용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가령 구제역으로 EU에서 돼지고기를 10만톤 수입하게될 경우 이 조항이 있으면 구제역 진정후 수입물량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영어본에 따르면 계속 돼지고기 10만톤을 수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송 변호사는 성과에 급급한 정부를 탓했다.
그는 "통상 관료들은 FTA가 시민과 중소 상인, 기업들에게 가져올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단순히 성과나 실적에만 치중해 '빨리 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며 " 미국이나 EU처럼 민간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번역 오류를 지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송 변호사는 "업무와 관련해 원산지 규정을 찾아볼 일이 생겨 조문을 살펴보니 잘못이 바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교부가 인력부족을 호소하지만 혼자 검수하는 데 사나흘밖에 안 걸렸다"며 "외교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누구든지 찾아낼 수 있는 오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일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송 변호사는 사법고시 40회에 합격했다. FTA협정문 번역오류를 발견할 정도로 통상법에 정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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