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카다피, 처음 만날때 백마타고 오더라"

머니투데이 중앙일보  | 2011.03.08 08:25
카다피 30차례 넘게 만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 그가 말하는 인간 카다피

1996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열린 대수로 2단계 공사 구간 일부 준공식에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카다피가 웃고 있다. [동아건설 퇴직임직원회 제공

최원석 전 회장이 4일 동아방송예술대학 이사장실에서 카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원석(68) 전 동아그룹 회장은 무아마르 카다피를 30여 번 만난 전설의 기업인이다. 때론 백마 타고 달려오는 카다피를 사막에서 만났고, 때론 그가 은닉해 있는 올리브나무 천막에서 만났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1, 2차 사업을 따냈던 최 전 회장. 어쩌면 측근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이 기행적인 리비아 최고지도자와 얼굴을 맞댄 사람일 것이다. 그런 그를 만나 과거의 카다피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달 3일과 4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경기도 안성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했다.(※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카다피 처음 만났던 때 기억하나.

 “1984년 사리르라는 곳에서 ‘관정(管井)식’이란 행사를 했다. 사막 지하에서 대수로에 물을 댄 수원을 발견한 걸 기념하는 행사다. 예정 시간에서 두 시간 넘게 지났는데도 카다피가 안 오더라. 짜증이 나려는데 카다피가 저쪽에서 백마를 타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1996년 8월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에서 대수로 2단계 통수식이 열리자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동아건설 퇴직임직원회 제공]
-다른 때는 카다피 어떻게 만났나.

 “만나려면 호텔서 이틀쯤 기다려야 했다. 언제 어디로 부를지 몰랐으니까.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와서 낡은 지프에 태웠다. 사막을 한 30~40분 달리다 보면 올리브나무로 위장한 철제 트레일러 같은 게 나타났다. 천막일 때도 있고. 그 안에 카다피가 있었다.”

-만남이 왜 그런 식이었나.

 “그는 늘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27번 저격을 당했다고 한다. 86년 미군이 카다피 관저를 폭격해 수양딸(당시 15개월)이 숨진 뒤에 더 그렇게(※숨어 다니게) 됐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어디서 자는지는 경호실장도 몰랐다고 한다.”

1997년 10월 카다피가 3~5차 대수로 공사도 동아건설에 맡기겠다는 뜻을 밝힌 뒤 찍은 기념 사진. [동아건설 퇴직임직원회 제공]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날까.

 “싸우다 죽을 것 같다. 자결도 안 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시작할 때도 인민회의에서 심하게 반대했다. ‘밀 300만 달러어치면 500만 명 국민이 1년 내내 먹고사는데,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 무슨 토목공사를 하겠다는 거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카다피는 밀어붙였다. 그런 사람이다.”

1986년 브레가에서 한 대수로용 초대형 콘크리트관 공장 준공식에서 최 전 회장이 카다피와함께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카다피의 장광설이 화제다. 요즘 테러에 대한 불안감에 쭈뼛거리면서도 1시간 넘게 연설을 하던데, 전에도 그랬나.

 “군중 앞에서 마이크만 잡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끝이 없다. 평소엔 별로 말이 없는데.”

-관료들 앞에서는 어땠나.

 “장관들하고 있을 때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게 핵심만 얘기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장관들은 카다피 앞에서 주눅이 들어 쩔쩔매더라.”

-카다피 일가 재산이 엄청나다.

 “그게 참 이상하다. 요즘 리비아 소식을 꼼꼼히 보는데 어디서 그런 돈이 났는지 내가 궁금하다. 대수로 공사 할 때 우리한테는 그런 얘기(※금품 요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카다피가 ‘이번에 얼마 결제하겠다’고 한 뒤에 보면 틀림없이 그만큼이 들어와 있고.(※부정축재를 하려 했다면 주겠다고 한 돈에서 얼마를 따로 떼어 놓고 줬을 것이라는 의미) 석유사업에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하고는 일절 없었다. 만날 수 있다면 어디서 돈을 만들어 런던·스위스(의 비밀계좌)에 넣었는지 한번 물어보고도 싶다.”


-카다피의 자식들 중에 일부도 기행을 일삼는다고 알려졌는데, 전에도 그랬나.

 “그땐 아직 어려서.”(※최 전 회장이 카다피를 마지막으로 만난 97년에는 후계자 1순위인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Saif al-Islam)이 24세였다.)

-당시에는 카다피가 리비아 국민의 지지를 받았나.

 “그랬다. 카다피를 만나면 늘 ‘공사에 리비아 사람들을 써 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공사 지역을 짚어가면서 ‘여기서는 몇천 명, 또 저기서는 몇천 명’이라고까지 했다. 국민들 일자리를 생각하는 거였다. 그땐 ‘이래서 리비아 국민들이 카다피를 지지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리비아 사람들이 하도 일을 안 해서….”(※카다피의 요청만큼 리비아인들을 채용하지는 않았다는 뜻)

-지금은 리비아 민심이 카다피에게서 등을 돌렸다. 카다피의 혁명 동지였던 무함마드 샬람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조차 지난달 유엔 연설에서 ‘내 형제 카다피는 리비아를 떠나 달라. 유엔은 리비아를 살려달라’고 했을 정도다. 무엇이 카다피를 변하게 했을까.

 “…. 권력은 영원한 게 아니지 않은가.”(※3일 처음 만나 이 질문을 했을 때 최 전회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침묵하기만 했다. 4일에 다시 묻자 이렇게 답했다.)

-카다피나 리비아와 요즘도 접촉이 있나.

 “2008년에는 교육협력을 하자고 해서 아들(차남 최은혁·34·학교법인 공산학원 사무국장)이 리비아에 갔고, 2009년에는 카다피가 전 주한 리비아 대사를 보내와 ‘한번 와 달라’는 얘기를 전했다.”

-리비아에 가보고 싶으신가.

 “97년이 마지막이었는데….(※외환위기로 그룹이 흔들린 뒤에는 가보지 못했다는 얘기) 그 사막이 어떻게 변했는지 꼭 한번 보고 싶은데….”

-요즘 건강은 어떤가.

 “(건너편에 앉은 차남 최 국장을 가리키며) 2006년에 저 아이가 신장을 줘 이식수술을 했는데 잘됐다. 의사가 30년은 끄떡없다고 한다.”

-한때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정 구속’이라는 영화를 직접 감독해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나.

 “시나리오가 신통찮아서….”(※최 전 회장이 구상하는 ‘법정 구속’의 내용은 그 자신이 분식 회계 등의 협의로 재판을 받은 과정에 대한 것이다. 당시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으나 고법에서는 이례적으로 법정구속됐다. 최 전 회장은 그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집행유예가 2심에서 구속으로 바뀐 데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만드실 생각인가.

 “…. 언젠가는 찍을 거다. 내가 한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건데, 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그걸 만들 수 있을까. 뭐, 자금이 좀 된다면 (만들겠다.)”(※이 답을 하기 전에 잠시 침묵하는 동안 최 전 회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과거를 떠올리며 분노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최 전 회장은 인터뷰 내내 유지한, 어눌하면서도 차분한 어조로 답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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