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일' 사명 띤 그랜저의 무기는?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11.01.26 11:01

[머니위크]현대차 5G 그랜저 시승기… 최첨단 ASCC 기능 주목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게 행동하라(물령망동 정중여산, 勿令妄動 靜重如山)"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선조 25년 임진년 91척의 왜적이 몰려올 때 외친 말이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이후 조선 수군의 첫번째 승리이자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신화의 서막인 옥포해전이 그 무대다.

1월18일 현대차 신형 그랜저의 시승은 옥포대첩기념공원을 목적지로 삼았다. 김해공항을 출발, 지난 12월 개통한 거가대교를 경유해 옥포대첩기념공원을 돌아오는 114km 코스다. 충무공의 외침처럼 그랜저는 침착한 움직임을 보였다.



람다Ⅱ 3.0 GDi 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힘은 든든하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RPM 게이지가 좀처럼 4000을 넘지 않는다. 부드럽게 속도가 올라가니 동력 성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시승한 기자들 사이에선 경쾌한 맛이 없다거나 반응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왔다. 대신 부드러운 주행과 조용한 실내가 화제가 됐다. 실제 설명회에서 현대차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 기술의 25년이 집약된 산물이 5G 그랜저”라며 “차량 내 정숙성을 나타내는 가속투과율이 렉서스 350이나 알페온보다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가벼움을 포기한 대신 침착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 5G 그랜저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시승코스는 그랜저와 잘 맞아 떨어졌다.

◆젊어진 디자인, 차도남 연상케 해

그랜저의 외관은 쏘나타와 닮았다. 언론에 공개되기 전 시험주행 때, 우연히 일반인에게 노출됐지만 ‘쏘나타인줄로만 알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물론 현대차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랜저의 모티프는 독수리다. ‘웅장한, 당당한, 위엄있는’의 뜻을 가진 ‘그랜드’와 ‘활공하다’의 뜻을 지닌 ‘글라이드’가 합쳐진 ‘그랜드 글라이드’ 콘셉트를 기반으로 했다. 실물을 보니 활강하는 독수리의 날개와 날카로운 부리가 차량 곳곳에 녹아있어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전까지 그랜저가 중후함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번 모델은 좀 더 젊어진 분위기다. 현대차 관계자가 “3세대 이후 최상급 대신 대중적인 럭셔리카로 변화했다. 5G 그랜저는 40대 남성이 주요 타킷”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도 한층 어려진(?) 느낌이다. 차량 내부의 센터페시아가 넥타이를 모티브로 삼은 것만 봐도 시크한 도시남자에게 어울릴 법하다.

마침 현대차는 1호차의 주인공으로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히어로 현빈을 선정했다. 극중 차가우면서 까칠한 도시 남자로 분한 현빈의 이미지가 그랜저와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2005년 그랜저 TG 1호차 주인공은 한동대 김영길 총장이었다. 그랜저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중후한 노신사에서 젊은 도시남자로 변한 셈이다.



◆교통 흐름따라 자동 정지, 재출발 '신기술'

이미 시승 전부터 화제가 됐던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하 ASCC)을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이 기능은 적정 차간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해 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의 진화 모드다. 교통의 흐름에 따라 자동 정지, 재출발까지 지원해준다.

이 기능은 전방에 차량이 없으면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로 정속 주행을 유지하고, 차량이 있으면 속도와 거리를 감안해 일정 간격으로 차량을 유지시켜 준다.

남해고속도로를 진입하자마자 바로 ASCC를 작동시켰다. ASCC는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온·오프 버튼을 누르고 속도가감 레버를 아래로 당기면 작동한다. 시속 110km로 설정하고 차간거리는 4단계로 설정했다. 총 4개 단계로 구성된 차간거리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앞차와의 거리를 더 넓게 유지한다.


작동 이후 오른발은 왼발과 같이 할 일이 없어졌다. 무릎을 굽혀 동승자와 같이 편안한 다리모양을 해도 속도가 줄어들거나 늘어나지 않았다. 전방 차량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속도는 점차 줄었다. 다시 앞차가 속도를 내니 뒤 따라 속도를 냈다. 모두 발의 움직임 없이 벌어진 상황이다. 속도가 줄어 정지상태가 되더라도 3초 이내에 차간 거리가 늘어난다면 여전히 ASCC는 작동했다.

차선을 옮겨도, 옆으로 차가 끼어들어 와도 작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박자 늦은 반응속도가 아쉬웠다. 앞 차가 속도를 내고 난 뒤에야 가속이 붙었고, 앞 차의 급제동 시에도 뒤늦은 제동력을 보였다. 마치 앞 차와 고무줄을 매단 느낌이다.

사고 위험성이 상존하는 기능임을 일깨워 준 사건 하나.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는 급한 내리막 경사에서 전방에서 사라진 차량을 인지하지 못한 탓인지 급가속을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앞 차는 급한 내리막을 지났는데 탑승 차량은 앞에 차량이 없는 것으로 인식해 가속을 하게 된 것. 현대차 관계자는 “커브길이나 언덕, 돌발 등 위급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인지력이 떨어진다”면서 “어디까지나 운전 보조시스템일 뿐이다. 전적으로 의지해선 안된다”고 설명한다.



◆극일(克日)의 대명사 그랜저 되나

5G 그랜저의 성능이 왜구를 상대로 ‘움직임을 무겁고 침착하게 하라’던 충무공의 외침과 닮았다면 그랜저의 과거는 일본을 넘어서기 위한 자동차산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그랜저’로 알려진 첫 모델은 1986년 출시돼 대형승용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연 베스트셀링 카다. 국내 대형차 시장점유율 80%에 이르고 10만대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랜저의 승승장구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랜저가 일본의 미쓰비시 데보네어를 카피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 한국의 최고급 차량이 일본의 짝퉁 상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랜저의 명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양국의 자동차산업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현대차는 절치부심했다. 이후 약 6년 1개월 주기로 새로운 모델을 내놓으며 변화를 꾀했다. 1992년 뉴그랜저, 1998년 그랜저 XG, 2005년 그랜저 TG, 그리고 2011년 그랜저 HG까지 2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일본차를 능가하는 차량을 만들어낸 것이다.

극일의 분위기는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5G 그랜저 제품설명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대차는 그랜저의 성능을 표현한 도표에서 혼다 어코드와 토요타 캠리는 그랜저에 비해 두단계 이하의 모델로 취급했다. 그랜저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은 모두 독일차량이 차지했다.

현대차가 밝히는 그랜저의 경쟁업체는 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 독일산 차량이다. 기껏해야 렉서스가 이들 무리에 끼어있는 정도다.

하지만 가격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혼다 어코드나 토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 등과 경쟁하기에 알맞다. 모두 3000만원대다. 5G 그랜저의 출시가격은 3112만~3901만원이다. 결국 일본차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마침 이들 차량은 최근 수입차시장의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수입차시장 내 가격별 점유율을 보면 3000만~4000만원대는 2006년 36.8%에서 2010년 47.8%로 크게 늘었다. 올해 수입차가 국내 자동차시장 전체에서 10%의 점유율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들의 브랜드 파워와 중저가 전략이 확대되고 있다는 해석으로 봐도 무방하다.

5G 그랜저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15일 상반기 판매촉진대회에서 ‘수입차 10만대 저지론’을 발표한 이후 나온 첫 모델이다. 과거 카피모델이라는 오명을 벗고 그랜저가 극일의 대명사가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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