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치킨과 자문형 랩

머니투데이 김준형 증권부장 | 2011.01.12 08:00

[김준형의 돈으로 본 세상]

모 그룹 계열 사장단 회의.
그룹 소속 증권사 사장이 증권업계의 현황을 설명했다. "고객들이 최소 비용으로 가장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구성하겠다..." 증권업계가 최근 경쟁적으로 자문형 랩 상품을 내놓고 있는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할인점 대표가 무릎을 치면서 한 마디 던졌다. "그럼, 우리랑 비즈니스 모델이 같네요" 쉽게 말해 이마트 롯데마트 이런 곳이나 증권사나 같은 사업을 하는게 아니냐는 말인데.
증권사 사장은 물론 다른 계열사 사장들도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상품은 다르지만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가져다 진열한다는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통 큰 치킨'을 내놓았던 롯데마트 경영진들이 간은 크지 못해서 청와대 수석 한마디에 꼬리를 내려버렸다. 하지만 '통 큰'이 던진 화두가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미친 파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통 큰 치킨은 '맛있고 믿을만 하면서도 값싼 치킨'이라는 욕구를 정확히 만족시키는 것이다. 동네 시장에 가면 5000원짜리 치킨도 없지 않지만, 깨끗한 마트에서 우아하게 쇼핑하면서 싸게 살 수 있는 치킨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상품'은 다르지만 금융서비스를 판매하는 금융도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히 겨냥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이후 증시에 불고 있는 '자문형 랩' 열풍도 따지고 보면 고객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데서 탄생한 히트상품이다.

1999년 처음으로 국내에 뮤추얼펀드가 등장했을 때 금융소비자를 파고든 무기는 '투명성'이었다. 이전의 투신사 펀드가 부실펀드 지원을 위한 편출입이 다반사로 이뤄졌던 탓에 뮤추얼펀드의 등장은 간접투자시장에 청량제가 됐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높아질대로 높아진 투자자의 눈높이는 그정도 투명성만 갖고는 만족하지 못하게 됐다. 월별 혹은 분기별 투자보고서만으로는 자기가 맡긴 돈 가운데 얼마가 주식에 들어가 있는지, 어떤 종목을 사두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주가가 뛰는데도 엉뚱한 곳에 투자한 탓에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뒤늦게 알고 속을 끓이고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내 계좌를 열어보듯 환하게 운용상황을 지켜보고, 신속하게 투자 결정을 내려주는 자문사의 투자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자문형 랩은 말 그대로 '딱'이었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특히 내 재산을 내가 관리할 수 있다는 매력이 크다. 기존의 펀드는 품 떠난 자식처럼 내 손을 떠나면 환매할 때까지는 남의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소비자는 변덕쟁이이고, 이들의 사랑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하기 때문에 자문형 랩이 언제까지 금융소비자의 입맛을 끌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가장 분석력이 뛰어난 자문사를 엮어내, 최소의 수수료로 '먹음직한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진열해 보이고 설명하는게 증권 은행 같은 금융회사의 최고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객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는 게 대형마트나 금융회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통 큰 치킨' 파문을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자사의 모든 제품 앞에 '통 큰'을 붙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통 큰 아파트' '통 큰 등록금' '통 큰 학원비' '통 큰 메뉴'...포장만 그럴싸한 '통만 큰'이 아니라 실속도 꽉 찬 '통도 큰' 제품과 서비스가 기업을 살리고 고객을 감동시킬 것이다.
우리부터 남들은 감히 쓰지 못하는, '통 큰 기사'를 내놓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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