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빛나고 아름다운 청춘

머니투데이 정기동 변호사 | 2010.12.27 09:17
얼마 전 대학 1학년 딸아이의 과제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인생을 구술 받아 정리하는 한국근현대사 과목의 과제였다.

기억이 남아 있는 대여섯 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매듭을 중심으로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가슴 아픈 에피소드도 곁들여가며 내가 겪은 50년 세월을 구술하는 일이었다.

딸아이는 처음 듣는 아빠의 가족사, 아빠의 20대와 30대 이야기에 빠져들며 몇 차례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다. 내가 살아온 20대와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야 할 20대를 비교하면서 더 험난한 20대를 살아야 할 딸아이의 건투를 비는 것으로 3시간 동안의 인생 구술은 마무리되었다.

과제의 취지는 구술사를 통해 살아 있는 역사와 마주치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덤으로 딸아이와 진한 교감을 나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20대가 더 힘들다는 데에는 반론이 많을 듯하다. 30년 전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하고, 뒷걸음질치고 있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폭압적인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가 확보된 시대에 아버지 세대보다 힘들 일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20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나태하고 경제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나라의 명운이 달린 선거에도 무관심하고 자신의 앞길을 챙기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곧잘 지금의 20대가 우리의 지난 20대와 다름을 못마땅해 하고 비난한다.

우리 세대는 이른바 386세대다. 격동의 시절 80년대에 질풍노도와 같이 20대를 보낸 세대다. 이 용어가 처음 나온 십여 년 전에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 출생의 30대'였지만 이제는 486과 586이 돼 있다. 그러나 지금 20대의 최대 과제는 민주주의도 이념도 아닌, 취업이다. 대학생활은 취업을 위한 학점관리와 스펙 쌓기가 최우선이다.

국가폭력이 사라지고 언론의 자유가 회복되고 선거로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건만 정작 그 세상의 수혜자가 돼야 할 지금의 20대는 서른이 되도록 취업전선에서 허덕이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세상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한마디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기 밥벌이조차 어려워지고, 천하를 뒤집어엎어 버릴 기개를 가져야 할 20대가 작은 자긍심조차 가지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는 이를 감당해야 할 20대를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이고 무책임하다. 그래서 우선 20대에게 '옛날이야기'를 훈장 삼아 늘어놓는 일은 그만두자.

"우리가 20대에는 이랬는데 너희는 … " 따위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20대 때 우리 윗세대의 '6·25 타령'에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그것은 교감을 차단하는 지름길이다. 우리 세대건 그 윗세대건 우연히 그 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에 주어진 삶을 살았을 뿐이지, 무슨 대단한 훈장거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보수논객 조갑제씨는 용돈으로써 20대를 통제하여야 한다고 하였지만, 턱없는 소리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해보자. 명문대가 아닌 대학을 다니는 대다수의 평범한 20대는 자신의 처지와 앞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회와 어른에 대해서는 무슨 불만이 있는지 들어보자.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푸른숲 펴냄)도 읽어보자. 그래서 30년 전보다 계층상승의 통로가 좁아지고 그 차이도 더욱 굳어져 가는 세상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성실히 고군분투하고 있음도 알아보자.

그리고 얘기해 주자. 너희도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이라고. 그리고 건투를 빌어주자. 그것이 486과 586이 20대와 연대하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오늘 저녁, 과제가 없더라도 나의 인생 50년을 구술하고 내 아이의 20대를 들어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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