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춘문예 우수상]치킨전쟁<3>

머니투데이 최재민 기자 | 2011.01.01 11:18
혼전에 혼전을 더해가는 대한읍의 치킨사태에 이제까지 손 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대한읍장이 드디어 한마디를 던졌다. 그 한마디는 대한읍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읍장이 대한읍 긴급회의에서 꺼냈다는 그 한마디는 바로 ‘나도 2주에 한번 정도는 치킨을 먹는데 좀 비싸더라.’였다. 간결했지만 너무도 강력한 메시지였다.

정무면 면장의 발언 후 그동안 읍장의 마음이 자신들 쪽에 서 있다고 굳게 믿었던 영세치킨업자와 치킨전문점들의 심장에는 불안의 화살이 꽂힌 듯 두려움이 찾아왔다. 여론은 여론대로 다시 휘청거렸고, 마침내 그동안의 치킨 값은 폭리를 바탕으로 취해진 가격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노가네는 어느새 대한읍의 서민들을 배려하는 책임있는 업체로, 진정한 소비자시대를 연 개혁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읍장의 발언을 두고 대한읍 민주서민협의회 대표가 비장한 목소리로‘치킨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는 대한읍네 치킨상인들의 자녀를 생각해보라’ 면서 질타를 던지는 등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한번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이 다시 평형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여론은 이미 치킨업자들을 대한읍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박가에게도 어느새 동네치킨점들은 죄다 적처럼 여겨졌다. 그런데도 아들은 배달치킨점의 편에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박은 진검승부를 통해 잘못된 아들의 생각을 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너는 착각을 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민이 뭐냐? 돈이 없으니 서민 아니냐 말이다. 그렇다면 서민경제를 위해서라도 싸고 좋은 것을 내놓는 업체가 많아야 한다 이말이다. 닭만 해도 그렇다. 노가네 대통치킨이 얼마나 싸고 좋냐? 그 좋은 치킨을 못 팔게 만든 동네치킨집들이 뭘 잘한 게 있냐?”
“아버지. 그건 싸게 파는 게 아니고 우리들 배달치킨집을 다 망하게 하는 거라니까요. 지들 배만 불리는 거라고요.”
“아이고 답답해. 네가 치킨집 사장이라도 된 줄 아냐? 너는 배달원이여. 치킨 비싸게 팔아 돈을 벌어도 네 월급이 올라가드냐. 안 올라간다 이말이여. 정작 배는 그놈들만 부르는 겨.”

“아버지. 내 월급 누가 줍니까. 배운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놈이 그래도 친구연줄로 치킨 집 배달이라도 하니까 먹고 사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치킨 집 망하면 내 일자리도 끊기는 거라고요. 유식한 말로다가 그런 게 도미노라는 거예요. 하나가 무너지면 그 뒤에 있는 게 또 무너진다 이거에요.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어찌 살라고요.”
“네가 그래서 몇 백을 받냐? 고작 백만 원 벌어오면서 뭘 그렇게 걱정이여. 그리고 노가네에서 아무리 닭을 팔아봐라. 치킨집들이 망하나. 그게 다 가격 안 내리려는 수작이라는 말이여. 그리고 지들이 비싸게 팔다가 망하면 지네들 탓이지. 어디 남 탓이야.”

“아이고, 아버지. 내가 속터져요. 아버지, 만약에요. 동네치킨 집 다 망하고 나면 그때도 노가네가 5천원에 닭을 팔까요? 아마 그때쯤 노가네는 다시 가격을 올릴게 뻔해요. 굳이 싸게 팔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테니까요. 결국 동네치킨집이 망하면 나중에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요.”

“너는 어떻게 매사에 그렇게 부정적이냐. 긍정적으로 좀 살아봐. 생각을 구부리지 말고 쫙 펴서 보란 말이다.”
“아이고, 속터져.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박은 오늘도 아들과의 진검승부를 끝내지 못한 채 울분을 감추며 사라지는 노란 꽁지머리의 흔들림만 보아야 했다. 아들의 뒷모습은 쓸쓸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문득 자신이 틀리고 아들이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박가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믿게 되었다. 사실 대한읍 곳곳에서는 읍장의 발언이후 여러 가지 조치들이 등장했다. 일단 대한읍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기존치킨집들에 대한 가격담합의혹 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또한 대한읍 시민단체협의회에서는 ‘치킨가격 정상화’와 관련한 공청회를 거쳐 나온 이른바‘치킨 공정가격’을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에 제시했다. 제시된 공정가격은 1만원이었다. 그러나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은 협의회가 제시한 공정가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1만원의 가격으로는 자영업자와 영세업자들의 영업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완강한 대립이 더해가던 그즈음 대한읍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현장직권조사결과 치킨 점들의 담합여부가 사실로 파악됐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담합 기간은 무려 4년 6개월로 추정됐다.

주요 치킨업계의 전체매출을 고려하면 과징금 규모만 해도 최대 수십억에 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부의 언론들은 대한읍의 모든 치킨업자들을‘악덕사기업자’로 몰고 갔다. 대한읍의 치킨 점사장들은 모두 좌불안석이 되고 말았다. 모이면 울음바다였고, 흩어지면 피눈물이었다.‘닭집개혁정의연대’ 라는 거창한 이름의 식파라치들은 치킨집의 허점을 닥치는 대로 촬영해 언론에 제보했다. 재활용닭, 상한 치킨무, 유효일자가 지난 제공콜라 등 배달치킨과 관련된 모든 치부가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치킨업자들을 향한 읍민들의 분노는 그렇게 곳곳에서 불어오는 부채질에 의해 타올라 갔다.

결국 그때까지 버티던‘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은 백기를 들고 말았다. 시민단체협의회에서 제시한 공정가격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노가네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가격파괴치킨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고만 것이다. 그 성명은 또한 ‘대한읍 닭사업자 조합’이 마지막으로 낸 성명이 되고 말았다. 성명을 내는 것과 동시에 조합이 해산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당장 노가네는 프라이드 치킨을 다시 튀기기 시작했다. 대한읍 80여개 곳곳의 점포문앞에는 ‘대통치킨’ 의 부활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하루 판매닭을 3백 마리로 제한하겠다는 문구는 슬그머니 사라져 있었다.

이날을 시민들은 다시 대통치킨이 살아난 날이라 하여 ‘부활절’ 이라 불렀고, 닭의 주권을 회복한 날이라 하여 ‘닭복절’ 이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박가는 흡사 독립군이 되어 나라라도 다시 되찾은 것 같은 기쁨에 휩싸였다. 노가네로 달려가 다시 살아난 ‘대통치킨’을 사와 손주들과 나눠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들은 그날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에게 주려고 박이 남겨둔 굵직한 닭다리는 커다란 대통치킨의 포장지속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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