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는 어떻게 타락하는가?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2011.01.03 11:21

[머니위크]청계광장

미국 주식시장의 역사는 인수합병사이기도 하다. M&A 붐은 주식시장 호황과 함께 찾아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풀 꺾이곤 했다. M&A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폐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리한 M&A가 빈번해지고 비판적 여론이 일었다. 그 결과 비정상적 M&A를 막기 위한 법 제정이 이뤄졌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법을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하는 것도 언제나 비슷했다.

그 흐름의 완결편 격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1980년대 말의 LBO(차입매수·Leveraged Buy Out) 열풍이었다. 이 M&A 기법은 인수할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외부자본을 조달해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기업도 사들일 수 있다. 1980년대 LBO의 대명사처럼 거론되는 사례가 바로 KKR의 나비스코 인수 건이었다. KKR은 당시까지만 해도 LBO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M&A부티크였다. 반면 RJR나비스코는 미국 최대의 제과업체였다. 당시 M&A 규모만 해도 250억달러에 달했다. 이 가운데 무려 200억달러 가까이가 외부에서 조달한 자본이었다.

남의 재산을 배경으로, 그 재산을 챙기려면 M&A를 도와줄 외부자본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나 투자펀드들은 LBO 시도에 뒷돈을 대주는 걸까? 담보가 확실하면 앉아서 큰돈을 벌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설득하면서 LBO를 주도하는 쪽에서는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들로서는 놓치기 싫은 기회다. 게다가 이들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기보다 인수하려는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경우가 많다. 그 편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이 때문에 KKR 대표 헨리 크래비스는 의기양양하게 “부채 대신 자본이 온다”(Debt is out. Equity is in.)고 떠벌리기까지 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LBO 열풍 역시 역풍을 만났다. 외부자본에 과도하게 유리한 조건을 내건 탓이었다. 지분이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차입이었다. 과도한 차입으로 M&A가 성사돼도 후유증이 심각한 경우가 점차 많아졌다. 은행이나 펀드로부터 자본을 조달하기 힘든 경우는 정크본드(junk bond)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크본드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의 채권을 묶어 위험성을 낮춘 채권이었다. 그런데 정크본드의 제왕으로 통하던 드렉셀 번햄 램버트사의 마이클 밀켄은 내부거래로 몰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드렉셀사는 파산하고 정크본드 시세 역시 추락하고 말았다. LBO 열풍에 뒤늦게 뛰어든 기업사냥꾼들의 행태도 문제가 됐다. 이들은 자신이 사들인 지분을 빌미로 협박(그린메일)도 서슴치 않았다. 경영권을 잃고 싶지 않으면 비싼 가격에 해당 지분을 사라는 요구였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M&A, 특히 외부자본 차입으로 인한 M&A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졌다.


LBO의 폐해를 잘 아는 우리나라에서는 LBO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인수하려는 기업에 재산상 손실을 초래하면서도 그 대가를 치르지 않는 LBO에 대해서는 인수를 주도하는 기업 경영진에 배임죄를 적용하는 식이다. 그 결과 LBO를 시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공개적으로 LBO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질적인 LBO는 적지 않다. 실패한 M&A의 대명사격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만 해도 그렇다. 6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조달했다. 이들은 대우건설 주식을 주당 2만6000원에 샀다. 금호는 3년 후 대우건설의 주가가 3만2000원을 밑돌 경우 되사준다는 약속까지 했다. 해외투자자들로서는 대우건설이란 담보에다 풋백(put-back)옵션까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현대건설 인수를 시도했던 현대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1조2000억원을 프랑스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기로 했으면서 결국 대출조건을 밝히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현대건설 인수 후 알짜배기 자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 매각을 독일계 기업과 논의한 바 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건도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5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인 3조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확정하지도 않은 채 덜컥 인수 계약부터 맺었다. 계약 이후 자금 조달을 위해 하나금융 경영진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자금을 댈 투자자들에게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내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뭐라고 둘러대든 미국에서 M&A를 타락시킨 LBO, 그 방식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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