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춘추전국시대…5500억 국민酒를 잡아라

머니위크 문혜원 기자 | 2010.11.23 10:42

[머니위크 커버]막걸리대전/'워낙 잘 팔리는' 서울탁주 vs '젊은층'에 인기 국순당

'무한경쟁!'

막걸리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국순당이 50년 전통의 서울탁주제조협회(서울탁주)의 독주에 제동을 걸더니 최근 들어선 대기업들까지 시장 진입을 입질하며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이에 질세라 지방의 군소 막걸리업체들도 품질 및 위생관리에 박차를 가하면서 도전장을 던진 상황. 그야말로 '막걸리 춘추전국시대' 다.

기업들의 시장쟁탈 열기만큼이나 시장에서의 막걸리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8년 3000억원선이었던 국내 막걸리시장은 지난해 4200억원으로 커졌고, 올해는 5500억원 규모가 예상된다.



서울탁주 “제조만 잘하면 되지 무슨 마케팅?”

요동치는 막걸리시장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부동의 1위' 서울탁주와 '대항마' 국순당의 접전이다.

지난해 5월 '국순당 생막걸리'를 출시하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국순당은 만 2년이 채 되지 않아 2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마케팅과 연구개발에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한 탓에 상대적으로 영업이익률이 감소했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막걸리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서울탁주는 국순당의 공격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부동자세'로 시장쟁탈전에 임하고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전략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다.

전체 막걸리시장 상황으로 볼 때 서울탁주는 올해 28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35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68%나 늘어난 실적이다. 성장률은 약간 둔화되더라도 시장에서의 탄탄한 입지는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순당은 올해 예상매출액을 38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매출 규모만 보면 서울탁주를 따라잡기에 아직 격차가 큰 상황. 그러나 지난해 86억원의 매출에서 올해는 이보다 3.4배 증가한 매출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서울탁주의 유일한 '견제마'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는 평이다. 내부적으로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막걸리시장에 진출해 1년 사이 2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한 것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국순당을 비롯해 여타 업체들이 우리쌀막걸리, 햅쌀막걸리 등을 출시하며 '국내쌀' 프리미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서울탁주는 여전히 수입쌀로 만든 '장수막걸리'가 주력제품이다. 100% 국내산 쌀을 사용한 살균막걸리인 '월매'가 있긴 하지만 주된 매출을 올리는 제품은 역시 수입쌀을 쓰는 '장수막걸리'다.

판매 확대를 위해 특별히 마케팅을 강화하지도 않는다. 서울탁주 관계자는 "우리회사는 50년 동안 막걸리만 만들었다. 소비자들은 이미 서울장수막걸리의 입맛에 익숙하다"며 “매일 공장을 풀 가동해 제조한 술을 그날 모두 소진하는 등 막걸리 제조에 힘쓸 뿐 특별한 마케팅 전략을 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탁주는 대신 생산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충북 진천에 전국 유통과 해외수출을 위한 국내 최대 규모의 막걸리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에서는 막걸리를 하루 10만ℓ 생산한다. 매일 2만ℓ를 생산하는 서울 도봉 연합제조장의 5배 규모다. 서울탁주는 이 공장 운영을 위해 자회사로 서울장수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탁주는 등산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하고 있어 국순당 등 다른 업체들이 시장에 끼어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워낙 잘 팔리는 술이기 때문에 마케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순당 “R&D와 과감한 마케팅으로 공격 또 공격한다"

서울탁주가 물량확보에 주력하는 데 비해 국순당은 제품 다양화로 시장장악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마케팅과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 물론 '골리앗' 서울탁주에 맞서는 데 힘에 부치는 면도 있다.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떨어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순당은 젊은층에게 어필하기 위해 TV광고 공세와 함께 현재까지 9개의 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국순당 생막걸리에서부터 프리미엄 막걸리인 이화주까지 가격도, 맛도 다양하다. 신세대를 겨냥해 용기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젊은층에게 국순당 막걸리는 서울탁주보다 매력적인 술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국순당은 막걸리 열풍 덕분에 살았다. 주력 품목인 백세주가 2004년 이후 쇠락의 길로 들어선 가운데 막걸리 제품이 날개를 달았기 때문이다. 국순당은 최근 6년 동안 매출이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막걸리시장에 진출한 이후 반전에 성공했다. 올해 국순당이 올해 추산하는 매출액 768억원 중 절반 이상이 막걸리 매출이다. 막걸리가 백세주(약 40%)를 따돌리고 최대 효자종목이 된 셈이다.

국순당 관계자는 "현재 영업이익이 조금 줄어든 것은 연구 개발 투자비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마케팅에 박차를 가할 예정으로 시장점유율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막걸리시장 넘보는 대기업, 약인가 독인가

국순당이 2파전을 벌이는 가운데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침투도 눈에 띈다.

가장 적극적으로 시장공략에 나선 곳은 CJ제일제당. 이 회사는 지난 8월 중순부터 충북 제천, 전북 전주, 경남 창녕의 대표적인 지역막걸리를 전국에 냉장 유통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영세 업체는 위생수준이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주먹구구식 마케팅으로 고전하기 십상"이라며 "CJ가 선정한 3개 업체는 CJ의 자체 기준에 부합하도록 위생수준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포의 아침'의 경우 기존 우포에서만 유통되던 막걸리를 전국에 유통시킨 이후 생산량이 400% 늘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의 막걸리 유통은 계열사인 CJ푸드빌에서 출시한 비빔밥 체인 '비비고'의 서브메뉴로서 1석2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



오리온은 계열사인 영화 배급업체 미디어플렉스를 통해 '참살이탁주'를 인수하면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오리온 관계자는 "영화 사업은 불확실성이 높은 사업인 만큼 안정적인 재무 유동성 확보가 시급했다"며 "마침 막걸리가 대세였고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했기에 ‘참살이탁주’를 인수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롯데주류는 서울탁주와 손잡고 일본 막걸리시장에 진출한 케이스다. 롯데주류는 최근 서울탁주의 자회사인 서울장수에서 생산한 서울막걸리의 일본 수출 초도물량 선적을 마치고, 현지판매에 들어갔다. 서울장수의 충북 진천공장에서 만든 서울막걸리는 서울탁주 측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롯데주류에서 R&D지원과 수출 및 일본 현지 마케팅을 담당한다.

한편 막걸리사업에 관심을 가졌던 식품기업 농심은 "검토만 했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 특정주류사업을 정관에 추가하면서 막걸리 시장 진출을 선언했던 지난 3월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는 대상도 마찬가지. 대상은 다양한 지방 막걸리브랜드를 조사하는 등 막걸리사업에 진출하려 했으나 지금은 "진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 자체가 로컬 푸드 성격이 강해 대기업이 전국 사업을 염두에 두고 진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상생'이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까지 넘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들이 막걸리 제조 대신 유통 쪽으로 사업분야를 좁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CJ제일제당을 통해 유통을 하고 있는 소백산막걸리의 관계자도 “CJ의 냉장유통으로 전국 판매가 가능해졌고, 매출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금 당장은 막걸리시장이 커지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대기업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 먹걸리업체 한 관계자는 “막걸리는 다양한 맛을 중시한다. 하지만 대기업은 가장 보편적인 맛을 대규모로 생산해 내는 데만 열을 올릴 것”이라며 “물량공세보다는 다양한 업체가 맛을 차별화하는 쪽으로 시장을 성숙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조에 뛰어들지 않겠다던 대기업이 막걸리업체의 노하우를 확보한 뒤 실제 제조에 뛰어들어 영세사업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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