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대장정의 총감독, 사공일 위원장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 2010.11.12 18:23

[G20]성공의 주역2, 사공일 G20준비위원장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준 열사는 회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분사(憤死)했지만, 100여년 뒤 우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유치했다”

지난해 9월 미국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한국을 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한 뒤 귀국하던 대통령 특별기 안에서 사공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이제 사공 위원장은 그 말에 한 마디를 더 보태도 될 것 같다.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사공일 G20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주요 20개국(G20) 정상들과 120여명의 글로벌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서울 G20 정상회의의 총감독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대장정은 2008년 11월 제1차 워싱턴 G20 정상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공 위원장(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을 불러 G20을 유치하라는 특명을 내린 뒤부터 시작됐다.

사공 위원장의 탄탄한 글로벌 인맥과 국제정치경제에 대한 역량을 높이 산 판단이었지만 G20 회원국들은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한국의 국제행사를 치룰 역량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공 위원장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과 세계 각국을 돌며 설득에 나섰고 마침내 유치에 나선 지 1년여 만에 회의를 따 냈다.

그러나 글로벌 불균형, 미·중 간 환율문제 등 의제 선정에서부터 합의를 도출하기 까지 고비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공 위원장은 의제 설정이 진통을 겪을 때마다 출장길에 올랐다. 래리 서머스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왕치산 중국 국무원 부총리 등을 만나 해결책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의 노력으로 한국이 제기한 이른바 코리아이니셔티브(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이슈)가 정상회의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었고 사상 유례 없는 비즈니스서밋(BS)도 성사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결정적 고비는 세계가 환율전쟁을 벌이던 지난 9월에 찾아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해 만든 '경상수지 목표제'를 들고 워싱턴으로, 베이징으로, 파리로 날아갔다.

전화, 이메일 등으로 각국 장관들과 국제기구 수장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셀 수도 없었다.이 같은 쉼 없는 조율과정의 결과가 서울 정상회의 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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