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금융 법률자문,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①

더벨 황은재 기자 | 2010.11.01 07:00

법무법인 광장 김현태 변호사.."법률자문, 고객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동반자"

더벨|이 기사는 10월05일(15:3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김현태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의 김현태 파트너 변호사(사진, 사법연수원 27기)는 '골수 광장맨'으로 불린다. 광장을 사랑하고 광장을 위해 뛴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광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김 변호사는 1999년 광장에 합류했다. 일찍이 증권회사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판사로서 재판업무를 하다가 돌아온 길이다. 그 이후 10여년, 그가 자문했던 딜(Deal)마다 금융시장이 주목했다.

지주회사 1호 수식어가 달린 우리금융지주 설립, 일반기업 지주회사 1호인 LG그룹의 지배구조 변경과 그룹 분리 과정의 중심에 김 변호사가 있었다.

지주사 전환에 '물적분할'이 활발하게 이용될 것이란 전망을 깨고 '인적분할'로 LG를 지주사로 탈바꿈시켜놨다. 그 과정에서 지주사의 신주를 대가로 하는 교환공개매수도 국내 최초로 시도됐다. 그 이후 그가 주도한 SK, CJ나 다른 그룹들의 지주사 전환에도, 같은 방법이 이용됐다. 결과적으로 김 변호사가 주도했던 LG의 지주사 전환은 이후 국내 기업의 지주사 전환 '교과서'가 됐다.

김 변호사가 주도한 우리금융지주 설립 작업은 포괄적 주식의 이전이 국내 최초로 적용된 사례이다. 그 이후 김 변호사는 같은 방식으로 하나금융지주 설립에 참여했고, 다른 금융지주사 설립도 이러한 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래서 김 변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기업지배구조조정 전문가'다.

적대적 M&A는 그의 다른 전공과목이다. 2004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적대적 M&A 사례인 KCC의 현대상선 지분 인수에 KCC를 대리했다. 그해 3월2일 주주명부 열람을 위해 KCC 경영진 등 40명과 함께 현대상선을 방문하는 장면은 지금봐도 인상적이다. 세종과 광장의 호숫가의 결투로 불렸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경영권 분쟁에도 자문을 제공했다.

기자가 '법률 자문 시장에 없던 길을 만들어 왔고 가보지 않은 길을 먼저 갔다'고 말하자 김 변호사는 "변호사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해봐야 겠다'보다는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객에 대한 자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전례가 없었던 일을 하는 것에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쾌감을 느낀다"며 "다른 일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하지만 성취감은 훨씬 크고, 이를 통해서 변호사와 로펌은 더 성장한다"고 말했다. 이베이의 옥션 공개매수,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설립, 하나은행과 서울은행 합병, 한화증권의 프루덴셜증권 인수, Citibank의 한미은행 인수 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굵직굵직한 딜만 추려봐도 40여 개에 달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판사로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는데 변호사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98년 김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발령났다. 김 변호사의 초임지는 성적 우수자들 가운데 일부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2년 만에 판사직을 그만뒀다.

김 변호사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는 "그릇된 일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판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거와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며 "자문 변호사로 변신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그는 자신했다.

요즘은 우리금융지주 매각 자문을 맡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바쁘다. 광장은 파트너급 변호사를 비롯해 20여명으로 자문팀을 꾸렸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현태 파트너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괄호 안은 이해를 위해 추가한 부분이다)

-판사에서 기업금융부문 자문변호사로 옮기게 된 계기는.

△ 사법시험 합격 전에 증권회사에 4년가량 있었다. 주주총회, 증자, 이사회 운영, 우리사주조합 등 주식관련 업무를 맡았다. 연수원을 마치고 중앙지방법원에서 1년 반 가량 근무했다. 그 때는 성적에 따라 판사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판사로 있어보니 '과거와 산다'는 생각이 들었고 뒤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다. 반면 자문변호사들을 보면 '먼저 앞서 간다'는 인상을 줬다. 변호사로 나오면서도 송무보다는 자문을 택하게 됐다. 증권회사에 있었던 경험도 작용했다. 자문 변호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실제로 자문변호사를 해보니 '선행해서 산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재밌고 일이 즐겁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하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문변호사는 활기차다.

- 다른 로펌도 있는데, 광장을 선택한 이유는.


△ 처음엔 광장의 문화가 좋았다. 선후배, 동료들 사이에서 격의 없는 대화가 이루어지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후배들의 교육이나 성장을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펌이라는 자랑을 듣기도 했었다. 들어와서 보니, 광장은 각 팀별 전문화를 통한 협업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변호사의 전문역량 강화의 기초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

-김 변호사하면 '기업의 지배구조 또는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먼저 떠오른다.

△지주회사 설립 자문을 많이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주회사 1호이자 금융지주회사 1호다. 우리금융지주는 주식의 포괄적 이전으로 세워진 회사로도 1호다. LG의 경우 일반주주회사로서 1호다. 1호가 좀 많다.

LG의 지주사 전환에는 준비기간까지 3년 가까이 걸렸다.(LG그룹은 2003년 3월1일 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했다). LG는 먼저 화학과 전자를 양대 축으로 인적분할을 해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그 이후의 정비과정을 거쳤다나눴다. 당시 LG는 수십여개 회사가 거미줄과 같은 지분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분관계를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를 지주회사 전환작업을 통하여 단순하면서도 투명한 지배체제로 변모시킨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 이후 LG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측면에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LG의 지주사 전환의 의미는 LG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지주사 전환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물적분할'을 지주회사 설립에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광장과 LG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이른바 '인적분할' 방식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 이후 우리가 진행한 SK, CJ, LS 등도 모두 인적분할을 사용했다. 다른 법무법인들이 진행한 지주회사 전환작업도 모두 우리 방식을 따라 왔다.

LG 이야기를 좀 더 하면, 인적분할 이후 두번째 단계로 지주회사 법제에 맞는 지분구조를 만들어야 지주회사 전환이 완성된다. LG와 광장은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주회사의 지분구조 제한에 부합하도록 하는 사후작업까지 구상했다. 이를 위하여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주식을 추가 취득해야 했다. 그 구체적인 여러 대안 중에서 우리가 채택한 것은 자회사 주식을 공개매수하면서 지주회사가 그 대가로 신주를 새로 발행하여 교부하는 것이었다. '신주교환 공개매수' 또는 '현물출자에 의한 공개매수'라고 불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잡하지만, 신주교환 공개매수에는 공개매수, 현물출자, 일반공모증자라는 세가지 법현상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당시 규정으로 서로 모순되는 규제 때문에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공개매수 관점에서 일반주주 보호를 위해서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유가증권만 대가가 되도록 한 당시 규정 또한 이를 막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지주회사와 관련하여서는 일반적인 것이 됐지만 그때는 그런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래서 이걸 풀어야 했다. 이 부분이 허용돼야 지주사 전환작업이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증권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입법청원도 하고 관련 송무 예규 도입도 설득해서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차례의 신주교환 공개매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이후 화학과 전자계역 지주회사의 통합과정을 거쳐 LG의 지주사 전환이 완성됐다. (이후 대부분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시 이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주사 전환은 광장식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아쉽게도 법률자문에 특허권은 없는 것 같다.

△(지주사 전환 이야기에서 계속) 사실 첫번째가 어렵지 큰 그림이 나온 이상, 두번째부터는 기존 사례에서 검증된 결과를 토대로 하므로 그리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자공시를 통하여 기존 구조에 대한 상당한 자료가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이미 검증된 방식을 따를 때는 이걸 참고하면서 일부 특수한 사안에 대하여만 미세조정을 하면 족하다.

그러나 처음 시도되는 구조의 딜에서는 여러 다른 대안을 함께 검토하면서 장단점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로펌 입장에서는 처음에 하는 딜이 수익성면에서도 좋고, 소속된 변호사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전문성이 확보되면 다시 그에 부합하는 어려운 법률수요가 있을 때 클라이언트는 다시 그 펌을 찾는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광장은 어려운 딜, 처음 시도되는 구조의 딜을 어느 로펌이 많이 하는가 하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광장은 이런 측면에서 자랑할만한 일을 많이 한다고 자부한다.

-지주사 전환 이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신한금융지주가 굿모닝증권을 인수한 경우인 듯싶다. 광장은 신한을 대리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협상하고 협상 계약까지 이뤄졌다. 그 기간 사이에 굿모닝증권 인수뿐만 아니라 신한증권과 굿모닝증권의 합병에 관한 계약까지 모두 체결되었다. 짧은 시간에 진행되다 보니 잠 못 자고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설립 자문이다. 당시 우리나라 거래소는 증권거래소가 운영하던 유가증권시장, 증권업협회의 코스닥시장운영부문과 코스닥증권이 함께 운영하던 코스닥시장, 선물거래소가 운영하던 선물시장이 있었으니, 각 시장의 운영주체가 달랐던 것이고, 이 운영주체를 통합하면서 그 통합주체인 한국거래소를 주식회사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법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분할합병이었지만, 사단법인인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 주식회사였던 코스닥증권, 그리고 사단법인인 협회의 일부문을 합쳐 주식회사로 출범시키는, 말하자면 협회의 사단법인 등 이종등인격간의 분할합병이었다. 같은 사단법인이라고 하더라도 회원의 종류가 정회원, 준회원, 특별회원 등으로 다양하고, 어떤 곳은 출자 규모에 따라 의결권이 부여되고, 어떤 곳은 1사 1 의결권을 부여돼 있는 등 구조가 상당히 복잡돼 있었다. 이런 이슈들을 정리하며 주식회사로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각 기업 사이 또는 각 회원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았는데, 공정한 잣대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이 딜로 김 변호사는 특수공공법인 합병 전문 변호사에 이름을 올렸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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