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커의 전설, 라응찬 회장..50년 뱅커 인생 최대위기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 2010.10.08 18:13

금감원에서 중징계 통보받아..불명예 퇴진 위기

#지난 3월24일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 주주총회가 끝난 후 '2010 신한 퍼스트구락부 회원의 밤' 행사가 열렸다. 신한지주 재일동포 주주들을 위한 밤이었다.

이 행사는 재일동포 주주들의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해마다 주총이 열리는 날 저녁 서울시내 호텔에서 열리는 연회다. 이날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난 재일동포 1세대 주주들도 표면적으론 라 회장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였다. 라 회장은 이날 4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미 재일동포 사회에서 라 회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희건 명예회장과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완전히 틀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 명예회장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라 회장에게 쓴 소리를 했다는 얘기부터, 4연임에 회의적이란 말까지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이 명예회장에 대한 라 회장의 태도도 예전 같지 않았다는 것.

신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이희건 명예회장을 비롯해 재일동포 주주들은 라 회장이 옳지 않은 문제에 연루된 것 자체를 걱정했다"며 "4연임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로 재일동포들과 관계가 예전 같지 않게 되자 라 회장이 국내 사외이사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몇 개월 뒤 결국 사건은 터졌다. 금융감독원이 라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던 9월 초였다. 국·내외 상황이 좋지 않자 라 회장을 둘러싼 가신그룹이 움직였다. 라 회장에 이어 2인자로 평가받던 신상훈 사장을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후 신 사장은 이사회에서 직무정지를 당했다.


라 회장도 7일 오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았다. '직무 정지' 상당 등 징계 수위가 결정되면 라 회장 역시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로써 라 회장은 승승장구했던 50여 년 뱅커 생활을 명예롭지 못하게 타의에 의해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시골에서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와 갖은 노력 끝에 금융계 '이병철'로 불렸던 그가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라응찬 회장은 1959년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업은행(현 농협)에 입행, 뱅커의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은행 일을 배웠다. 1975년부터 대구은행 비서실장을 맡고 있던 라 회장은 1977년 초 재일동포 기업인 이희건 명예회장을 알게 됐다. 이 명예회장이 우리나라에 제일투자금융을 설립하려고 준비하면서 당시 김준성 외환은행장에게 라 회장을 소개받았다.

라 회장은 이후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때 상무를 시작으로 '신한맨'의 표상이 됐다. 그는 10년 만에 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10년 후 신한지주가 탄생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조흥은행 인수, LG카드 인수 등 굵직굵직한 M&A를 성공시켰다. 재일동포 주주들도 이때까진 라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수많은 신한맨들은 그를 롤 모델로 삼고 뱅커로서 꿈을 키웠다. 신한금융그룹을 국내 3위(총자산 기준)로 키워낸 라 회장은 직원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신한문화'의 상징이었던 라응찬 회장. 이제 그 문화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이라는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신한금융그룹 내부 핵심 관계자는 "라응찬 회장이 3연임에 만족하고 스스로 물러났다면 이렇게 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한 사람의 과욕과 노욕이 결국 조직 전체를 망가뜨린 꼴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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