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은 14일 신한금융을 함께 일궈온 신상훈 사장의 해임을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정확히 28년 전만해도 신한은행 창립을 위해 젊음을 불사르자며 손잡았던 두 사람이었다.
농업은행(농협)과 대구은행, 제일투자금융을 거쳐 신한은행을 창립한 라 회장은 신한은행 창립 당시 상무로 들어와 산업은행 출신인 신 사장과 만났다.
이 둘의 만남에는 학연이나 지연 그 어떤 연고도 개입되지 않았다. 라 회장은 신 사장에게 파격인사를 통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줬다. 산업은행에서 대리를 지내던 당시 35살의 신 사장을 비서실장 없는 비서실에서 과장으로 발령을 냈고 39살에 영동의 석유공사 지점장에 앉혔다.
물론 이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변에선 '호남출신이라서', '너무 젋은 나이라서'라는 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신 사장의 탄탄대로를 차단하려 했지만 그 때마다 라 회장이 든든한 방패막이 돼줬다. 신 사장 본인도 아직도 "왜 그렇게 날 챙겨주신 것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속에서 신 사장은 라 회장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키워갔고 둘은 신한금융을 굴지의 금융회사로 만들어 갔다.
라 회장은 1991년 신한은행장에 오른 이후 3회 연임을 하면서 1인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신 사장은 줄곧 라 회장의 곁을 지켰다. 2003년 라 행장의 뒤를 잇는 행장으로, 2009년 지주사 사장으로 라 회장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듯 했다.
하지만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의혹이 불거지면서 파멸의 전주곡은 시작됐다. 라 회장 측에선 의혹 제공의 씨앗이 신 사장 쪽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됐고 결국 이것이 검찰 고소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금융계 안팎의 분석이다.
이날 이사회는 신 사장에 대해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12명의 이사 가운데 라 회장을 포함한 10명이 신 사장의 직무정지에 찬성표를 던졌다.
신 사장은 이사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직무정지는 풀리면 돌아올 수 있다. 이사회에 충분히 설명했고 자세한 내용은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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