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 협력자들, 고독한 천재를 밀어내다"

머니투데이 진상현 우경희 기자 | 2010.08.06 08:23

[워크스마트연구회 5차 회의]지식 관리편

1999년 미국 ABC 방송의 '나이트라인' 프로그램. 한 디자인 회사가 쇼핑 카트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개선해 나가는 전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공개됐다.

산업디자이너, 심리학, 건축학, 언어학, 생물학 등 다양한 인재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은 소그룹별 정보 수집, 전체 팀원의 브레인스토밍, 다시 소그룹별 프로토타입 제작 등 일사분란하게 협업을 진행한다. 마침내 닷새째. 곡선을 살리고 6개의 바구니를 끼워넣을 수 있는 개방형 구조의 새로운 카트가 탄생한다.

이 프로그램은 '협업 과정'을 통해 어떻게 창의적인 개선안이 도출 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줘 미국 시청자들에게 큰 반향을 끌어냈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회사가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기업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도요타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세계 디자인의 심장' 아이디오(IDEO)다.

한 명의 천재가 아닌 다양한 분야의 종사자들이 지닌 지식과 노하우, 열정을 어떻게 결합시키냐는 '워크 스마트(똑똑하게 일하기)'를 원하는 기업들의 중요한 과제이다. 직원들은 물론 직원들의 가족, 외부 전문가 집단, 소비자까지도 '지식 관리(Acquaintance Management)'의 대상이 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서 지식 관리의 중요성과 활용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머니투데이와 삼성경제연구소가 함께하는 '워크스마트 연구회'는 지난달 19일 5차 모임을 갖고 바로 이 주제, 스마트한 '지식 관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워크스마트 연구회 5차 모임이 지난달 19일 삼성생명 서초사옥 삼성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렸다. 문형구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경영대학 교수)이 '지식 경영'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한 명의 천재? 다수의 인재!!= 세계적인 창조 기업들은 소수의 탁월한 개인 뿐 아니라 협업을 강조한다. 팀 브라운 아이디오 최고경영자(CEO)는 "제품, 서비스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어 '고독한 천재'의 자리를 '열정적이고 학제적인 협력자'가 차지했다"고 분석한다.

여기에는 '집단 지성'의 위력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다. 집단 지성은 다수가 참여해 상호간에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집단의 지적 능력을 말한다. 인류역사를 새로 쓴 전신기, 비행기, 전구 등 세계적인 발명품들은 한 명의 천재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집단지성의 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신기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는 물리학자 조지프 헨리의 병렬 개념, 화학교수 레드너 게일의 전자석 설계, 알프레드 베일의 점과 선을 조합한 숫자신호 방식 등 외부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집단 지성은 기업에 있어서도 화두다. HP는 실험실과 창고를 개방하고 직원들이 언제든 고가의 장비를 활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P&G는 9개국 연구개발(R&D) 센터의 7500여명 직원들이 업무상 문제점 및 개선 아이디어를 내부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웅진코웨이의 아이디어 수렴제도인 '상상오션', KT의 아이디어 게시판인 ‘KT 아이디어 위키' 등이 주목받고 있다.

아이디어가 실제 혁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우선 지속적인 아이디어 제안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포용의 문화가 중요하다. 월마트의 경우 '꼴찌 격려 미팅'을 통해 본인의 실패에 대해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발표하고 동료들이 문제 해결을 적극 지원한다. 일본의 혼다는 도전적인 업무를 추진하다 실패한 직원 중 한 명을 선정해 '올해의 실패왕상'과 상금 100만엔을 지급한다. 프로토타입 제작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기 시각화는 피드백을 촉진시켜 제품의 성공가능성을 높인다.


제안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인재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선두기업인 픽사가 1996년 두번째 작품으로 '벅스라이프'와 '토이스토리2'를 동시에 진행했을 때 일이다. 감독, 작가 등 실력있는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은 모두 '벅스라이프' 제작에 참여시키고 기본 아이디어의 우수성이 이미 검증된 '토이스토리2' 제작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팀에 맡겼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토이스토리2' 제작은 진전이 없었다. 감독과 제작자들이 문제해결을 위한 협력까지 거부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벅스라이프 제작팀이 '토이스토리2' 제작까지 넘겨받아 남은 8개월만에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식을 위해 핵심자산까지 공개하라"= 집단 지성을 활용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내부 자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매년 열리는 IBM의 온라인 브레인스토밍 활동인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s)'에는 IBM 임직원은 물론, 전세계 파트너사 임직원, 고객, 학계 전문가 등이 광범위하게 참가한다. 델의 아이디어스톰은 델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게시하고 투표에 참여하면 관련 아이디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는 사용자 커뮤니티다. 네티즌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아이디어는 제품개발에 적극 적용되고, 채택된 아이디어를 낸 소비자에게는 1000달러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소비자들이 상품화 여부까지 결정하게 해 성공을 거둔 기업도 있다. 일본의 생활용품회사인 양품계획은 소비자의 아이디어 중 투표를 통해 최종 선정된 우수 아이디어는 소비자들의 선주문을 받아 이 수량에 따라 제품 생산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출시한 상품은 기존 방식으로 출시된 제품에 비해 최대 50배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아예 회사의 핵심 자산을 일반에 공개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 사례도 있다. 2003년 3월 금광개발에 어려움을 겪든 골드코프는 50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금맥찾기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직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50년간 축적한 회사의 핵심 자산인 지질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성과는 엄청났다. 지질학자를 비롯해 대학원생, 수학자, 장교 등의 참가자들이 110곳의 새로운 금맥 후보지를 제안했고, 이중 80% 이상에서 금맥이 발견됐다. 특히 55억 달러 가치의 금광을 발굴한 사람은 지질학자가 아닌 컴퓨터 엔지니어였다. 이 행사를 계기로 연매출 1억 달러에 불과하던 골드코프는 90억 달러 규모의 거대 광산업체로 급부상했다.

◇모바일과의 결합..진화하는 집단지성=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집단 지성의 활용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된 소통 수단들은 서로 관련없어 보이는 이종 지식간의 결합을 촉진시킨다. 이는 기존의 생각을 새롭게 재결합할 수 있는 통섭형 아이디어를 만들어냄으로써 보다 폭발력 있는 혁신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진화된 소통 방식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 5월 트위터 개념을 접목한 새로운 사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인 '아이펍(i-pub)'을 개통했다. 길기준 제일기획 인사팀장은 "아날로그 시대 소통이 수직성과 경계가 분명하고, 완성형 커뮤니케이션이 많은 반면 온라인상에서는 수직성이 없고, 미래 완성형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며 "완성형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할 말을 하게 되면서 훨씬 많은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현 우경희 기자 j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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