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클래식'자본주의에서 '재즈'자본주의로!

머니투데이 최남수 MTN 보도본부장 | 2010.07.30 14:37
요즘 우리경제의 모습을 보면 ‘찻잔 속의 태풍’을 보는 것 같은 걱정을 거둘 수가 없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잘 나가고 있다. 금융위기의 여파를 가장 빨리 벗어난 나라로 자평도 하고 있고 칭찬도 해외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어깨가 으쓱해질만 하지만 웬지 허전하다.

스티브잡스,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말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실제로 사람들의 생활도 잡스가 원하던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사람을 스마트하게 만들어주는 ‘스마트 폰’은 대세가 됐다. 생소하기만 했던 어플리케이션은 이젠 콘텐츠의 주류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주고받고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유비쿼터스 소통’의 시대도 막을 올렸다.

역사적으로 인쇄 기술이 개발되거나 IT 열풍이 분 시기는 개선의 시기가 아니라 혁명, 혁신의 시기였다. 소량의 필사책이 인쇄기술의 개발로 대량 생산돼 지식공유가 확산되는 지식 폭발의 시대를 열었다. IT 확산은 정보 유통의 속도에 혁명을 가져왔다. 스마트 폰부터 시작된 기술적 진보 또한 의사소통과 정보 유통 방식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올 ‘혁명의 과정’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 지역과 국경, 시간의 제한 없이 많은 지구촌 식구들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소통의 대폭발 시대’가 활짝 꽃을 피울 것이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변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권위주의적, 시스템적 체제와 사고의 해체이다. 시대를 앞장서가는 애플이나 구글을 보면 이젠 회사를 움직여가는 자본은 물량 위주의 돈이나 인력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 속에서 싹트는 창조, 창의의 힘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제품을 만들어 내고 ‘뇌력’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소프트웨어로 입을 짝 벌어지게 하고 사람들은 유연한 사고로 유목민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기업들. 이런 기업문화와 경쟁력은 종래처럼 하드웨어 위주의 대량생산이나 집단이 시스템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여가는 체계적, 과학적 관리방식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지위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개방적인 소통을 하고 집단의 힘에 개인의 창의적 사고가 가위 눌리기보다는 개별 직원의 아이디어가 마음껏 분출되는 육성되고 관리되어지는 ‘위와 밑이 융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기업 성패의 본질적 요소가 되고 있다. 수직적 소통방식이 깨진 자리에 수평적, 민주주의적 소통의 새 물꼬를 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시대의 한 복판으로 우리는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드웨어적 대량생산 경제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죽 앞서왔지만 새 경제체제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창조, 창의력, 민주주의적, 수평적 소통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굳이 음악으로 표현하자면 시대는 ‘클래식자본주의’에서 ‘재즈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린 아직 ‘클래식자본주의’ 틀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음악에서 클래식은 무엇인가? 엄격함과 권위의 음악이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악보에 기술된 음표의 명령 그대로 연주한다. 개인적, 창조적 돌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연주자들은 숨 죽인채 지휘자와 악보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관객 또한 연주 중이거나 악장 사이에는 아예 박수조차 칠 수가 없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 지휘자, 연주자, 관객 모두 절제된 분위기 속에서 ‘집단의 예술’을 즐긴다.


반면 재즈는 어떤가? 정반대이다. 권위를 거부한다. 재즈에는 완벽하게 정해진 악보가 없다. 템포와 코드 진행만 느슨하게 기록된 악보가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연주자들이 각자의 느낌을 실어 자유롭게 채워 넣는다. 연주자의 개별적, 돌출적 창의성이 오히려 음악의 완성도를 높인다. 연주자와 관객의 관계도 클래식과 정반대이다. 연주자는 관객의 박수와 환호에 반응하면서 자신이 채워 넣은 ‘자율적 음감의 세계’를 풍성하게 채워 넣는다. 창조의 여백이 재즈음악의 묘미를 더하는 것이다.

음악을 경제에 그대로 적용하자면 지금까지 우리경제와 기업이 걸어온 길은 ‘클래식 자본주의’였다. 지휘자와 시스템에 의해 정해진 ‘악보’에 따라 정교하고 쓸모 있는 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왔다. 지휘자의 혜안, 비전, 지시가 경쟁력의 수위와 기업의 체력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였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싹을 틔우고 있는 ‘재즈자본주의’는 지휘, 지시보다는 연주자, 즉 직원 개개인의 무질서해 보이는 창조적 움직임들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 내는 ‘신경제’이다.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일사불란해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의견들이 밑에서부터 분출하고 여기에서 혁신적 아이디어들이 채택돼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구글이 직원들에게 20%의 시간은 자유롭게 쓰게 해 아이디어를 배양해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게 대표적 예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신체제의 등장에 당혹해하고 있다. 자신이 가진 경쟁력으로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익숙하지도 않고 경쟁력도 취약한 요소들이 경제의 ‘신무기’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관적이지는 않다. 그렇다고 낙관적이지도 않다. 비관하지 않는 건 우리는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방향만 잡히면 무섭게 달려가는 결집력과 실행력이 있기 때문이다. 보릿고개로 허덕이던 나라가 불과 40년 사이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새 역사의 장을 써온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낙관적이지 않은 것은 잘 나간 기업이나 사람은 그동안 해 온 방식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 때문에 환경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하고 가진 걸 버려서 사는 변신의 길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역사에서 사라지거나 쇠락해갔다. 하지만 변화에 무모할 정도로 적극적인 기업들은 다시 번영의 상승기류에 탑승하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화약제조에서 나이론 제조, 이어서 화학기업으로 과감히 변화를 선택한 듀퐁, 목재에서 가전으로 그리고 다시 휴대폰 사업으로 노마드처럼 이동해 온 노키아도 여기에 해당된다.

늦었지만 우리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알았다. 한국 경제와 기업이 변화의 흐름을 잘 짚어 ‘클래식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재즈자본주의’의 새로운 물결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해법은 알았다. 이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베스트 클릭

  1. 1 "나랑 안 닮았어" 아이 분유 먹이던 남편의 촉…혼인 취소한 충격 사연
  2. 2 유재환 수법에 연예인도 당해…임형주 "돈 빌려 달라해서 송금"
  3. 3 "역시 싸고 좋아" 중국산으로 부활한 쏘나타…출시하자마자 판매 '쑥'
  4. 4 "파리 반값, 화장품 너무 싸"…중국인 북적대던 명동, 확 달라졌다[르포]
  5. 5 김정은 위해 매년 숫처녀 25명 선발… 탈북자 폭로한 '기쁨조' 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