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신화, 불패와 붕괴의 혼재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2010.08.02 10:13

[머니위크]청계광장

‘신화(myth)는 삶의 경험담이다.’

저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1904~1987)이 한 말이다. 신화가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 믿음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부동산 역시 신화의 일부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부동산 투자 성공 경험이 널리 알려지면서 부동산을 궁극의 투자 대상으로 여기는 믿음이 널리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부동산 신화다.

부동산 신화의 붕괴 역시 일반적으로 신화가 퇴색해가는 과정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서 점차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외환위기 직후만 하더라도 부동산 신화가 본격적으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1년이 채 안 돼 떨어진 부동산 가격 대부분이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고공행진이 이어졌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부동산 신화가 본격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1년간 가격 하락폭은 외환위기 직후보다 작았다. 하지만 그 후 가격이 더 떨어지고 거래는 실종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부동산 신화의 붕괴에 실패 경험 외의 것도 한몫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이 예측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기반한다. 은퇴가 본격화 된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이 수도권 아파트들을 판다는 전제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이 전망은 대중들에게 과학적 토대를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최근 부동산 신화와는 정반대의 신화, 즉 부동산 붕괴 신화가 발 빠르게 대중들을 파고드는 이유다.

부동산 붕괴 신화는 급기야 부동산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선 부동산 가격 붕괴의 위험성을 목 놓아 부르짖는 건설업계가 정치권과 정부에 집요하게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언론이 이 주장에 가세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권도 부동산 거래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정부에 비슷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대출 규제 완화가 가계 부채 문제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는 정부만 아직까지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값 대폭락 시나리오가 부동산 부양책을 부추기는 희한한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과거 선례를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조만간 부동산 대출 규제가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즉각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영향력이 어느 분야보다도 큰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돌려놓는 상징적 계기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금융 불안과 경기 침체 가능성만 사라질 경우, 다시 부동산 경기가 불붙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신화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쯤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부동산 붕괴 신화는 어떨까? 우선 베이비부머들이 아파트를 팔고 떠난다는 징후는 아직까지 없다. 현재의 부동산 가격 하락과 거래 실종은 그보다는 금융 불안과 경제의 불확실성이 장기화 되는 데 기인한다. 그 결과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구입을 미루는 데서 비롯된다. 이 시기에 집값이 하락하는 것은 결코 대재앙이 아니다. 그보다 그간 워낙 비정상적으로 움직였던 가격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따름이다. 이 과정이 고통스럽다고, 금융 규제를 풀어 부동산시장을 다시 흔들리게 할 일은 아니다. 그건 폐렴을 치료하겠다고 후유증이 훨씬 큰 항암 화학치료를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외환위기가 마무리 될 무렵 국민의 정부는 경기를 빨리 살리겠다는 일념하나로 부동산 경기를 부추겼다. 그 후 참여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잡는 데 올인하느라 다른 경제 정책을 챙길 겨를조차 없었다.

지금은 부동산시장을 정상화 할 좋은 기회다. 그간의 부동산 신화와 부동산 붕괴 신화가 지나친 기대나 공포라는 것을 일깨워줄 계기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부동산은 언제나 오르기만 하며, 언젠가는 폭락할 것인가? 집은 꼭 필요해서 사는 것인가? 지금 집을 사는 것이 무리는 아닌가? 신화는 삶의 경험담이지만, 인간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던 것 역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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