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식약청장의 '흡혈박쥐 공생論'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 2010.07.13 11:11

'갑'에서 '을'로 변화하는 식약청

"다른 동물 피를 3일만 못 먹어도 죽는 흡혈박쥐가 어떻게 평균 15년을 사는 줄 아십니까?"

노연홍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취임 100일만에 처음으로 바이오기업 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흡혈박쥐'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13일 오전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조찬회에서다.

말이나 소 등 큰 짐승들의 피를 빨아먹어야 생존이 가능한 흡혈박쥐는 신진대사가 빨라 3일만 피를 못 먹으면 죽는다. 다른 동물의 피를 먹이로 삼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혈박쥐는 평균수명이 15년에 이른다.

노 청장은 "개중에 능력 좋은 박쥐 하나가 조달한 피를 혼자 다 먹는 것이 아니라 일가친척은 물론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나눠주기 때문"이라며 "치열한 생존법칙이 적용되는 생태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노 청장은 '흡혈박쥐' 세계에 이처럼 호의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신뢰'를 꼽았다. 언젠간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도와주는 게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해 상호 호혜적인 이타주의가 형성된 것이라는 게 노 청장의 설명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노 청장의 목표는 식품의약계와 식약청이 '흡혈박쥐'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100일 동안 눈 뜨고 있을 때는 물론 자면서도 '식약청' 생각뿐이라는 노 청장은 직원들과 우호적인 생태계의 중요성을 가장 많이 이야기 한단다.

그는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라며 "식약청은 업계로 인해 업계는 식약청으로 인해 발전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사실 식약청은 식품의약계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갑'이다. 기업에서 만들어 낸 제품을 심사해 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해주는 허가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시판 중인 제품에 문제가 있는지 감시하는 권한도 갖고 있어 식약청 말 한마디에 제품 매출이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이 영원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식약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심사 허가 관련 시스템을 대폭 개선해 불필요한 에너지가 투입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소요기간도 크게 줄였다. 지난해 4월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후 5개월 만에 신종인플루엔자 백신이 시판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뜨고' 있는 바이오시밀러 허가심사규정도 작년 7월 만들어 셀트리온(허셉틴)과 한화석유화학(엔브렐), LG생명과학(엔브렐)이 개발하는 제품에 대해 임상시험을 승인해줬다. 하루라도 빨리 출시해야 세계시장을 장악하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노 청장은 "빠르게 허가과정을 진행해주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수년전부터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용한 사례가 전무했다"며 "불과 몇년 사이 식약청에 일어난 변화는 '천지개벽'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갑' 시절을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개혁의 발목잡지 못하도록 '옴부즈맨'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민원을 넣었다가 담당 공무원에게 보복당하는 일이 없도록 민원인에 대한 보복금지 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노 청장은 "수많은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장치"라며 "국민 안전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청과 생물의약발전협의체가 주최한 이날 조찬회에는 100여명의 바이오기업 CEO가 참석해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노연홍 식약청장 외에 이병건 녹십자 사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생물의약품 시장 동향과 발전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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