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흔들리는 금융

머니투데이 성화용 부국장  | 2010.07.13 07:50
국가브랜드위원회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신설된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이나 민간 금융회사인 KB금융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위원장이 한 때 한국은행 총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더니 결국 KB금융의 회장에 낙점돼 취임을 앞두고 있다. '회장'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은 '위원회'나 '중앙은행'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그것과 딱히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위원장'은 '총재' 후보로 거명되다가 결국 '회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쉽게 수긍하고 이해한다. 발족 1년 반 밖에 안된 '위원회'보다 KB금융이 훨씬 중요한 곳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위원장보다는 회장에 더 적합한 인물이었는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한국을 자세히 모르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리콰이어먼트(필요 조건)가 전혀 다른데, 사람이 그렇게 없나요?" 글로벌 헤지펀드의 한국 사무소에서 일하는 미국계 한국인이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질문했을 때 뭐라고 얘기해야 할 지 말문이 막혔다.

호기심이 많은 건지, 알고도 비꼬는 건지, 속으로 당혹해 하면서도 초면임을 감안해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래도 노조측은 긍정적인 것 같던데요. 그 분이 워낙 팔방미인이어서요"


그의 무례는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다. "요즘 장외에서 주식을 사려면 (권력층과의)커넥션이 필요한가요?" K사가 시중은행이 가지고 있는 관계회사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돌기 시작한 루머를 그도 전해 들은 것이다. 속을 모르는 사이여서 뻔한 답이 오갔다. "그럴 리가 있나요. 설사 그런 시도를 한다 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당시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된 실세가 이 딜에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가 시장의 '선수'들 사이에서 흘러 다닌 건 사실이다. 실제로 일이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려 하자 소문은 더욱 증폭됐다. 최근 청와대 비서관이 은행장과 기업의 CEO들을 매달 만나 여권 비선조직의 민원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호사가들은 '심증'을 굳히는 분위기다.

당사자는 물론 그 모임의 성격이 민원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거래 양측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소문이 너무도 쉽게 시장에 흡수 전파된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한국의 금융 자본시장은 아직도 그런 상식 밖의 개연성을 쉽게 수긍하는 시장인 것이다. 권력이 '사람'과 '거래'를 좌우하는 한 금융시장의 기능적 한계는 명확하다. 20년, 30년전에 비해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지만 시장의 지배구조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권력투쟁과 정쟁의 불똥이 튀어 수백조원을 움직이는 금융회사가 휘청거리는 걸 볼 때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실명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라응찬 신한금융그룹 회장 문제가 그렇다. 야당의 대표는 이른바 '영포 라인'의 비호 사례로 라회장을 정조준했다. 사실관계를 되짚어 보기도 전에 이미 라회장과 신한금융그룹은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다. 의혹이 부풀려진 것이든 아니든, 이런 일이 금융을 흔들어서는 곤란하다.

'금융'은 '경제'의 영역에 온전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벤다이어그램은 정치와 경제의 교집합에 금융을 그려 넣고 있다. 당장은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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