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폐기업의 '막장 주총'과 주주의 한숨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 2010.07.09 15:05

[현장클릭]소액주주, 경영진 등 대립에 멱살잡이..각자 주총


9일 새벽 6시30분 주택가에 위치한 서울 도곡동 이루넷 본사 앞. 이른 시간에도 40여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출근복장의 소액주주부터 변호인단, 채권단, 경호원, 경찰 등 저마다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 이루넷과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었다. 이루넷은 지난 4월 감사범위 제한에 따른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코스닥에서 퇴출된 기업이다.

◇"노후자금부터 신용대출까지…"

현장에서 만난 개인투자자 A씨는 이날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회사에 출장을 냈다. A씨는 "노후자금으로 모은 돈을 불려보려고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이루넷 주식 40만주를 샀다"며 "은행금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낸 게 결국 이렇게 됐다"고 자조했다.

이루넷과 가맹계약을 맺은 학원 관계자 B씨는 "전국 200여개 지역 학원과 계약을 맺을 정도로 좋은 회사였고 기업가치를 보고 투자했다"며 "학원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손해가 막심하다"고 털어놨다.

주부인 C씨는 "주주인데 주총 현장 구경도 못하게 하는 게 말이 되냐"며 "경영이나 재무상황을 잘 몰라 회사의 명성을 믿고 투자했는데 가족들 볼 면목이 없다"고 토로했다. 신용대출을 받아 깡통계좌가 됐다는 D씨는 취재를 극구 거부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소액주주들의 지분과 위임장만 모아도 금방 100만여주가 될 정도였다. 이루넷의 가치를 믿고 주식을 샀다는 투자자부터,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던 시점에 지인의 추천으로 고수익을 노리고 뛰어들었다는 투자자까지 천태만상이었다.

왜 안전한 우량주에 투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들은 "감사의견 거절이 나오기 이틀 전까지도 대표가 방송에 출연해 실적개선을 이야기했다"며 "공시, 주가흐름, 회사 관계자의 말을 살펴도 회사가 이렇게 될줄은 전혀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업무차, 상황보러, 회사집기 가져가겠다"

주총 현장에는 주주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법무법인 한얼측은 소액주주 변호인단으로 공증 변호사와 함께 현장에 왔다. 300여명의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총에서 직접 권한행사를 시도했다.

당초 오전 8시로 예정됐던 주총은 이루넷측이 경호인력을 동원해 건물 입구를 모두 봉쇄하면서 오후 12시30분경까지 4시간 이상 지연됐다. 변호인단은 "주총 현장을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입구 자체를 막아버리는 곳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소액주주보다 극성인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들을 사채업자라고 밝힌 일행은 "이루넷 대표가 빌려간 대출금 20억원을 받으러 왔다"며 "회사 내부 집기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대표에게 각서만 받고 가겠다"며 몸싸움을 벌여 경찰이 출동했다. 소액주주들은 "주총 방해를 위해 이루넷측이 보낸 사람들 아니냐"고 의심키도 했다.

상황을 지켜보러 온 채권단도 속이 탔다. 지난 4월 상폐 이후 김민종 전 대표의 544억원 규모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한 데다 사용처를 알 수 없는 각종 우발채무들이 표면화되고 있는 탓이다. 제1 채권자인 신안저축은행은 지난해 11월 이루넷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했다 25억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주총 무효화·경영진 교체할 것"

소액주주들은 이날 오후 12시30분이 지나서야 시작된 주총에서 과반수 넘게 확보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현 이사 및 감사를 해임하고 별도의 인사를 선임하려던 당초 계획도 무위로 돌아갔다.

의장을 맡은 김만기 이루넷 대표는 이날 주총에서 발행주식수 2696만여주 가운데 의결권 위임을 포함해 주식 1629만8900여주의 출석만을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출석률은 61.9%다.

이는 당초 300여명의 소액주주가 의결권 위임을 통해 확보한 약 1200만주의 주식 중 611만주 정도만을 인정한 수치다. 의결권을 위임받아 주총에 참석한 한진화 법무법인 한얼 변호사에 따르면 이루넷측은 임시주총 소집공시 이전에 발급받은 인감증명(주식 589만주에 해당)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만기 대표는 여러 차례 정회 끝에 "이사 선임 등 (회사측)안건이 반대없이 100% 찬성으로 통과됐다"고 공표했다. 소액주주들도 동시에 소규모 주총장 뒤편에 따로 모여 의장 불신임안과 현 이사 및 감사 해임안을 자체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총에 참석한 주주들과 경호용역, 직원 간에 몸싸움은 물론 욕설이 그치지 않았다. 경효용역이 의사봉을 따로 들고 주총 진행에 관여하는 가 하면 휴대폰을 압수, 외부와의 접촉을 전면 차단키도 했다.

결국 파행으로 치달은 주총은 소액주주 변호인단이 "법적으로 이번 주총을 무효화하겠다"며 법원으로 향한 뒤 일단락됐다. 소액주주들은 향후 공증 변호사를 대동해 자체 주총을 거쳐서라도 현 경영진을 해임하겠다는 입장이다.

새벽 5시부터 주총 현장을 찾았다는 E씨는 "이루넷 공화국에서는 주주가 주인이 아닌 것 같다"며 "기업사냥꾼이 마지막 남은 회사 자금까지 빼돌리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말하며 첫 끼니를 챙기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 이루넷은…

이루넷은 종로엠스쿨, 아인스, 위싱웰, 대덕영재 등과 가맹계약을 맺고 프랜차이즈 학원에 교재 및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지난 1992년 설립됐다. 2000년 코스닥에 상장됐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김민종 전 대표 선임 이후 대규모 유증에 이은 주가부양, 주력사업과 무관한 전기 오토바이 사업 진출 등으로 부실이 본격화됐다. 결국 올 3월 감사의견 제한에 따른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4월 상폐됐다. 상폐 직후 김민종 전 대표는 544억원 규모 횡령 혐의가 발생해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베스트 클릭

  1. 1 "남편, 술먹고 성매매"…법륜스님에 역대급 고민 털어논 워킹맘
  2. 2 "보고싶엉" 차두리, 동시 교제 부인하더니…피소 여성에 보낸 카톡
  3. 3 "아이고 아버지! 이쑤시개 쓰면 안돼요"…치과의사의 경고
  4. 4 붕대 뒹구는 '강남 모녀 피살' 현장…"무서워 출근 못해" 주민 공포[르포]
  5. 5 경매나온 홍록기 아파트, 낙찰돼도 '0원' 남아…매매가 19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