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을 '패션 1번지'로 만든 바로 이 사람

머니투데이 이명진 (사진=이동훈) 기자 | 2010.06.14 10:35

[★디자이너 인터뷰]한국 패션계의 거목 박항치 "한국적=세계적 아냐"

70대의 나이, 50대의 외모, 20대의 열정, 10대의 미소…

한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박항치의 첫 인상이다. 연극연출가의 꿈을 접고 패션계의 거목이 된 사나이.1970년대부터 30여 년간 '옥동(玉東)'브랜드로 한국 패션계를 묵묵히 지켜 온 뚝배기 같은 디자이너.

햇살이 따사로운 초 여름날 서울 청담동 ‘옥동’사옥에서 디자이너 박항치를 만났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장소는 청담동 패션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검은색 4층 건물로 그가 직접 디자인해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매 시즌 컬렉션을 거르지 않고 참가했던 저력의 디자이너답게 70세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젊은 외모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배우를 거쳐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다 '주위에서 떠밀다시피 해'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는 박항치는 지금도 연극과 뮤지컬의 의상도 직접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국내 디자이너의 해외무대 진출에 관해 묻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만을 가지고 해외에 진출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것 일뿐, 한국의 패션을 이해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항치는 “한국적인 모티브를 세계적인 감각과 트렌드에 맞춰 디자인해야 한다” 라고 충고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청담동을 패션1번지로 만든 사람이 박항치라고 하던데.
▶ 맞다. 이곳(청담동)을 지나가면서 "저거 되겠네” 하는 느낌이 왔다. 80년대 초에 청담동에 땅을 사서 건물을 지었다. 그 후 한국의 내노라 하는 디자이너들이 줄줄이 청담동으로 왔다. 집을 살 때도 물건을 살 때도 감각으로 모든 것을 진행해 왔는데 지금까지 잘 맞았다. 그래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별명이 ‘족집게’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독특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나.
▶ 평범한 것을 싫어했다. 독특하다는 것은 ‘특이한 것이 아닌 남보다 앞서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따른 고통과 분노가 따르지만 내 경우엔 그런 사람이 성공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옷을 잘 입어서 어릴 때부터 유명세를 탔다. 대학졸업 후 연극연출을 할 때 코디 없던 그 시절, 배우들에게 "그 의상에는 이 스카프를 하면 좋겠네"등 조언을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배우 김지미, 신성일, 엄앵란씨가 어느 순간에는 의상 상의를 항상 나와 했다.


-30여 년간 꾸준히 컬렉션을 참여한 걸로 안다.
▶ 패션의 흐름은 컬렉션으로 이뤄진다. 컬렉션이 없는 나라는 패션이 발전할 수 없다. 글 쓰는 사람도 글을 안 쓰면 감을 잃듯 디자이너도 컬렉션을 계속해야 아이디어도 나오고 감을 잃지 않는다. 그만큼 컬렉션은 중요하다. 컬렉션이 없는 나라는 발전이 없다. 컬렉션은 디자이너를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드는 장치다.

-지금까지 몇 벌 정도 디자인을 했나, 당신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 너무 많아 모르겠다. 대략 지금도 1년에 500벌의 디자인을 한다. 그러나 갈수록 어렵다.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재킷이라도 ‘박항치 냄새가 나’ 라는 소리를 들어야 진정한 디자이너다.

처음 디자이너 시작할 때는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왜 저 정도 밖에 못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 선배들이 대단해 보이고 가끔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라는 생각도 한다.
컬렉션 준비로 시간이 촉박한데 디자인이 안 나올 때는 마약하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새로운 아이디어의 압박이 심하다. 가끔 머리를 의자에 박기도 한다(웃음)


-한국 최초로 오사카에서 컬렉션을 한 걸로 안다.

▶ 그렇다. 일본 패션계는 이미 80년대 중반에 파리에 진출한 연출자도 있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그래서 몇몇 디자이너가 함께 도쿄 컬렉션과 파리컬렉션을 다니면서 운영노하우를 익히고 유명 연출가를 국내에 데려와 일을 추진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우리나라 컬렉션을 태동시켰다. 그 후 진태옥씨랑 한국최초로 오사카에서 컬렉션을 했다.

-국내 디자이너의 해외진출이 어려운가.
▶ 초창기 자력으로 진출하던 디자인너들이 한계를 느끼고 포기한 사례가 많다
자질도 중요하지만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기업의 파워나 조직력, 그리고 국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솔직히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적인 것 그 자체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지 한국의 패션을 이해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인 모티브를 세계적인 트렌드에 맞춰서 디자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을 어찌 생각하나.
▶ 일종의 흐름이다. 자라, H&M등이 들어와 있지만 디자이너들이 조심해야하는 것은 등장과 퇴장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자이너도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 자칫 자신의 에너지와 실력이 바닥이 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한계 또한 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루이비통관련 프로그램을 봤다. 마지막 컬렉션을 마치고 초조하게 아르노 회장의 한마디를 기다리는 마크 제이콥스의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다.


-'박항치 스타일'은 무엇인가.
▶ '유니크 하다(독특하다)'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내가 디자인을 유니크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나는 '디자인이 멋지다'고 할 때가 좋다.
멋있는 것은 예술이고 예쁜 것은 일시적인 취향이다. 세련된 사람은 멋있지만 예쁜 것은 일정부분 촌스럽다. 멋진 것은 범접하지 못하는 깊이가 있는 것을 말한다.
누가 "콜렉션이 예쁘다" 그러면 '촌스러웠나보네' 이렇게 해석한다 (웃음)

-'인간 박항치'는 어떤 사람인가
▶ 얼마 전 내노라하는 연극연출자의 작품을 두 번 만나고 하지 않았다. 품위가 떨어지는 일은 팔자를 고쳐주겠다는 제안이 오더라도 거절한다. 유명한 많은 사람들과 알고 친하지만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베풀고 살려고 노력한다. 부모 형제 등 나 아닌 모든 사람에게 신세를 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수세계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그만뒀다.


-옷을 잘 입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면.
▶ 투자와 감각이다. 관심을 갖고 옷을 구매하고 투자해하고 감각도 있어야 한다. 싼 옷이든 비싼 옷이든 세련되게 입는 감각이 중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나 소망이 있다면.
▶ 나이 들어도 절대 초라해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활동력 있는 그런 삶이 끝까지 가길 바란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에너제틱하다고 말한다. 언제나 그런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단독]구로구 병원서 건강검진 받던 40대 남성 의식불명
  2. 2 2세 신발 만든 지 5개월 만 파경…지연, 황재균 흔적 싹 다 지웠다
  3. 3 33평보다 비싼 24평…같은 아파트 단지인데 가격 역전된 이유
  4. 4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쯔양 복귀…루머엔 법적대응 예고
  5. 5 티아라 지연·황재균 이혼 인정…"성격 차이로 별거 끝에 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