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단순화된 퍼즐조각을 과장되게 붙인 듯한 입체파의 특징이 물씬 나는 작품이었는데 옆에 작은 참고사진이 붙어있어 눈길이 갔다.
바로 19세기 인상파 화가 마네의 대표작 '풀밭위의 점심'이었다. 피카소가 그것을 입체파 기법으로 '리메이크'한 것이었다. 작품명도 원작과 동일한 것으로 달았는데 그 뒤에 '마네를 따라서(after Manet)'라는 말이 더 붙어있었다.
원작과 같은 이름을 붙였으면 불필요했을 법하다. 그런데도 굳이 원저자를 직접 거론하며 누구작품을 변형한 것인지 분명하게 밝힌 성의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조금만 달라도 표절이 아니라며 우기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현실에서 그의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빅밤부는 4월23일자 뉴욕타임스 문화면 톱으로 난 기사를 보고 관심이 갔다. 동양예술가도 아니고 미국 예술가가 미국에서 구하기 조차 힘든 대나무를 소재로 건축적인 뭔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빅밤부는 4월27일 부터 메트뮤지엄 여름 기획전시의 일환으로 본관 옥상에 전시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이 작품이 건축과 조각, 퍼포먼스를 합친 퓨전예술이라며 스탄형제와 그것을 전시한 메트뮤지엄의 눈썰미를 한껏 추켜 올렸다.
이에 대해 말 못할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95년 도미해 최근 10년간 나무 또는 대나무를 끈으로 엮는 설치예술을 해온 마종일 작가다. 그는 스탄형제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기법이나 결과물이 유사해서가 아니다.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스탄형제의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일하면서 작품활동을 했고 작품 이미지를 모두 스탄형제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스탄형제는 원래 사진을 기반으로 한 설치작가였으나 2008년부터 갑자기 대나무 설치예술에 뛰어들었다.
예술전문가가 아닌 사람으로서 창조와 모방, 모방과 표절의 경계를 그을 능력은 없다. 또 예술가끼리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은 흔히 있고 또 새로운 창조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영향을 받은 사람이 취하는 태도다. 변형을 했건 모방을 했건 피카소처럼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돈과 힘을 가진 사람이 모방, 심지어 베끼기까지 하면서 인정하지 않고 그로 인해 원저자가 정신적,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된다면 이는 도덕 문제를 넘어 범죄로 봐야할 것이다.
스탄형제의 빅밤부와 마 작가 작품을 비교한 현지 한 미술평론가는 두사람 작품간에 "긴밀한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내가 봐도 스탄 형제의 빅밤부가 좀 더 건축학적으로 발전하고 울창해졌다는 외에는 차이가 없어 보였다.
작품 스타일과 같이 일한 정황을 보면 스탄형제가 최소한 마작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같은 사실이 공개됐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치 못했다. 이같은 인정(acknowledgement)부재속에 역으로 마 작가가 스탄 형제의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오해받는 피해를 보고 있다.
눈물겹게 노력한 결과 뉴욕에서도 한인작가들이 언론과 미술관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표절시비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미국 유럽 등에 출품 및 전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두명의 한인작가 작품도 각각 중국인과 미국인이 베꼈다는 주장을 최근 접했다.
한국작가의 국제적 저작권이 보호되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때라는 얘기다. 한국문화원 등을 통해 한국 문화행사만 주선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 작품의 저작 침해에 대해 인적ㆍ법적으로 따끔하게 대응할 지원시스템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그같은 공격적 보호가 있을때 세계에 한국을 심는 작가들의 활동도 더욱 왕성해질 것이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