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동운동연합 창립 멤버로 당시 지도위원을 맡아 중앙위원장이었던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도지사 후보와 호홉을 맞췄다.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근무하다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초대 노조위원장,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노동자 권익 향상에 매진했다.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노동운동에 역점을 두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지켜보며 '좌파적 노동관'에서 선회했다.
'기층민중의 이익대변'을 기치로 1990년 창당한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후보로 15대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당 원내부총무·노동위원장·제1사무부총장·기획위원장, 국회 실업대책특별위원회 간사, 희망을여는정치연대 간사 등을 역임했다.
16·17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돼 3선 의원이 됐다. 당시 같은 당 이재오·홍준표 의원과 함께 '저격수'로 불리며 당 내 입지를 넓혔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지역구(경기 부천소사)는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같은 당 차명진 의원에게 물려줬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경영학과(70학번)를 다녔다. 서울대교련반대시위로 1971년 제적됐다.
유시민 야권 경기도지사 단일후보(78학번.경제학과)와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신한민주당의 개헌추진위원회경인지부결성대회를 저지하려 한 1986년 5·3인천사태에 가담했다 유 후보의 동생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저돌적인 이미지, 합리적이고 기민한 업무 스타일이 이명박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리틀 MB'로도 불린다. 줄곧 한나라당의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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