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과 아이폰

더벨 이상균 기자 | 2010.05.19 10:47

[thebell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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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세종대왕의 지시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한문해설서다. 특히 한글의 제작원리가 드러나 있는 책으로 유명해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삼성그룹에는 훈민정음이란 이름의 오피스 소프트웨어(SW)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마이크로소프트(MS) 워드와 국내 오피스SW의 자존심인 한컴 오피스에 비해 현저하게 인지도가 낮은 제품이다. 삼성은 그룹차원에서 훈민정음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지만 결과는 허망한 실패였다.

그런데 이 제품이 수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오직 삼성그룹 내에서만. MS워드나 한컴 오피스와도 잘 호환이 되지 않고 기능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훈민정음을 고집하는 것은 그런 비호환성이 보안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논리에서다.

최근 휴대폰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대체되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는 애플의 아이폰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폰 열풍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기업문화가 개방과 소통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앱스토어라는 공개된 SW시장을 마련해주고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기꺼이 개발자와 나누고 있다.

통신사업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무선인터넷망도 개방했다. 무선인터넷망을 제공해 거두는 수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이를 무료로 전환해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거래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두 번째는 휴대폰 사업이 기존 하드웨어(HW) 중심에서 SW중심으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사실 아이폰은 기계 자체로서의 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잔고장도 잦고 A/S도 번거롭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아이폰에 들어간 애플리케이션과 각종 SW의 창의성, 톡톡 튀는 발상의 전환에 열광하고 있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삼성이 최근 스마트폰 사업 강화를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영입하고 관련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있다. 아이폰에 더 이상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삼성의 이 같은 노력은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삼성은 아이폰 열풍의 두 가지 배경과는 연결고리가 부족해 보인다.

삼성은 여전히 피라미드 체제의 정점에 서서 하도급업체를 컨트롤 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애플처럼 개발자와 상생을 도모하려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얼마 전 삼성의 2차 협력업체인 한 벤처회사 사장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의 영업이익률을 절대 기사화시키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영업이익률이 공개되면 삼성의 원가 인하 압박이 더욱 거세지기 때문이란다.

'훈민정음'에 집착하는 것으로 볼 때 개방과 소통에 익숙해질 지도 의문스럽다. 전 세계 SW시장의 지배자로 군림해온 MS조차도 젊은 사자인 애플과 구글에 밀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특유의 기동성과 빠른 의사결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삼성이 과연 MS 보다 유연한지, 더 창의적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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