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기와 유로화의 미래

권성태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구미경제팀장 | 2010.05.12 09:35

[MT뷰]권성태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구미경제팀장

권성태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구미경제팀장
유럽통화통합(EMU) 체제하에서 1999년 1월 출범한 유로화는 그동안 3억2000만 명의 유로지역 국민들이 사용하는 단일통화로서 비교적 순조롭게 정착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구제금융지원 방안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전염될 우려마저 높아지면서 유로화는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유로화의 미래와 관련, 우선 되짚어볼 문제는 EMU 체제의 존속 여부이다. 이는 곧 유로화의 생존 여부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사실 EMU 체제 출범 이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동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견해가 표출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력 격차를 무시한 단일환율 적용, 재정동맹의 부재, 재정적자국에 대한 관용적 태도, EMU 체제의 동요 시에 대비한 비상대책의 부재, 과도한 역내 의존성에 따른 높은 전염효과 등 EMU 체제의 근본적 결함에 근거를 두고 있다.

EMU 출범 당시부터 건전한 국가와 부실한 국가를 모두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단일환율 적용에 따른 국가 간 불균형 확대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더 넓은 유럽’의 실현이라는 이상 때문에 경제동질성 확보보다는 오히려 경제력 격차가 큰 국가를 추가로 회원국에 편입했다.

그 결과 글로벌 불균형에 필적하는 유로 회원국 간의 불균형 확대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번 그리스 재정위기와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것이고 결국 과거 환율변동 폭을 제한한 유럽환율조정기구(Exchange Rate Mechanism) 소멸과 같이 EMU 체제도 붕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 EU 체제의 핵심인 EMU가 붕괴될 경우 독일, 프랑스가 주도하는 ‘하나의 유럽(One Europe)’이 무산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구제금융 제공 등으로 시간을 벌면서 EMU 체제의 보완에 나설 것으로 보여 EMU 붕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관리체제의 마련, 방만한 재정운용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강구, ‘질서 있는 방식’의 채무재조정(debt restructuring) 제도 도입 등을 보완방안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EMU 체제의 근본적 안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 보완 뿐 아니라 회원국간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유로화의 기축통화로 부상 가능성이 좌절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동안 유로화는 미 달러화를 대체할 1순위 기축통화 후보로 부상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 이후 유로화 환율이 대폭 하락하면서 유로화의 안정성이 저하되고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파급효과로 역내 금융시스템이 크게 불안정해지면서 기축통화가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들이 크게 훼손되었다.


앞으로 유로화의 환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유로화 환율은 구제금융 지원과 EMU의 제도개선 움직임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경우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으나 다음과 같은 요인을 감안할 때 지난 10여년과 같은 수준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첫째, EMU 체제가 안정을 되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MU 체제의 보완방안들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실제 제도화되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역내 불균형 조정방안도 임금삭감 등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반발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

둘째, 과거에는 ECB의 긴축정책 등으로 유로화가 강세를 유지하였으나 앞으로는 경기회복 지연에 따른 통화완화정책, 금융 및 재정시스템 불안 등이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로화는 지난 10년간의 ‘행복한 유년기’를 마감하고 많은 문제로 고민해야 하는 ‘혼돈의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회원국들은 안정적인 환율과 역내 교역 및 금융거래 활성화에 힘입어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적자국의 경우 고통이 뒤따르는 재정긴축 및 경제구조 조정을, 흑자국은 구제금융 지원 등의 부담과 더불어 인위적으로 내수를 확대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는 동안 유로화는 이전과 같은 강세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미 달러를 대체할 기축통화로서 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이번 남유럽의 재정적자 문제는 한편으로 유럽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잠복해 있던 유럽경제의 각종 문제점이 노출되어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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