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투자자 甲乙관계, 소비자보호=금융선진화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 2010.05.10 08:05

[금융강국 코리아] <2>소비자보호 ①금융회사 건전성과 함께 시장안정의 두 축

최근 골드만삭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제소 당한 사건은 소비자보호와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대 투자은행(IB)이다. 뛰어난 리스크 관리 능력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최후의 승자로 군림하고 있다. 운용자산만도 8710억 달러다. 우리나라의 한 해 국내총생산(8329억 달러·2009년)보다 많은 규모다. 과거 정부 역대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과 헨리 폴슨을 배출하며 월가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금융회사로서는 치명적인 사기 혐의로 제소 당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를 기초 상품으로 하는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을 팔면서 투자자 손실 가능성을 알고도 이를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 자신들은 이 상품의 폭락에 돈을 걸어 이익을 남겼지만 이를 모르는 고객들은 1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골드만삭스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정부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투자자 보호를 외면하는 금융회사의 부도덕한 금융 관행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법원이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 골드만삭스는 투자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등으로 막대한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회사 신뢰 추락까지 겹쳐 자칫하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소비자 보호 확대 필요성= 금융산업은 이 처럼 다른 산업보다 정보 비대칭성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파생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상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처럼 구조가 복잡해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런데 상품은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금융회사는 대형화되고 지주회사로 바뀌는 추세다. 그 만큼 통합서비스나 교차판매가 확대되고 있다.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그에 비례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구입 전 상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손실이 나도 상당 시간이 흐른 뒤 알거나 규모가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객과 금융회사의 이해상충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금융회사는 고객의 재산을 다루는 일종의 대리인이다. 서비스 본질 상 기만행위(fraud)가 존재할 가능성이 다른 산업보다 매우 높다. 정보 우위에 있는 금융회사에 비해 고객의 협상력도 떨어진다. 교섭력이 불균형하니 '끼워 팔기' 등의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금융회사가 사실상 독과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점도 소비자 보호 확대 배경이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에 따른 '시장 실패'와 소비자 후생 감소 문제가 다른 산업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금융회사의 영업행위 감독은 금융시스템 안정에도 필수적이다. 금융회사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를 보호하는 환경조성이 필요한 이유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당국이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에 대한 적절한 영업행위 규제에 실패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 결국 대출의 대량 부실에 따른 금융회사의 연쇄도산을 불러와 금융시스템이 혼란을 겪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와 건전성 및 금융시스템 안전성간 연관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들 기능에 대한 균형적 시각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 패러다임 변화= 긴박했던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정책 비중이 금융 개혁으로 옮아가는데 소비자 보호 강화가 매우 중요한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소비자 보호에 소홀했던 게 위기의 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반성에 따른 것. 역으로 금융회사의 투기적 성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위기 전에는 '금융 선진화=금융회사 역량 강화'로 인식됐다. 복잡한 상품 개발하는 곳이 선진 금융회사로 여겨졌다. 그런 회사가 절대적인 정보가 부족한 고객을 상대로 복잡한 상품을 팔아 세계 금융시장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도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우선시한 나머지 소비자 보호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감독이나 검사에 비해 뒷전으로 밀린 게 현실이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 없이는 전체적인 금융시장의 안정과 선진화를 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산자와 판매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각 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와 규제 장치 보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재무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가 동면의 양면처럼 융합되어 있는 탓이다.

골드만삭스 외에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푸르덴셜과 메트라이프 등 보험사들은 변액보험을 불완전 판매했다 집단소송을 당해 1999년 각각 26억 달러와 17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했다. 대외 이미지가 훼손에 따른 신규 계약이 줄고 신용등급도 하락, 재무건전성이 악화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위기 발생 후 키코(KIKO)와 펀드 가격폭락 사태 등으로 소비자 피해는 물론 관련 금융회사의 건전성도 영향을 받았다.

소비자 보호 강화에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그 만큼 국민의 피해가 컸다는 방증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카드 등 소비자금융 감독을 전담하는 소비자금융보호청 신설하는 등 소비자 보호 강화를 금융개혁의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소비자 보호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상반기 중 종합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2010년은 '금융소비자보호의 원년'으로 삼아 금융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감독패러다임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후적인 민원처리 중심의 소비자보호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합리한 제도나 관행을 능동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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