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피할 수 없는 3가지 이유

뉴욕=강호병특파원  | 2010.05.06 09:24

나라빚 과다, 환율과 수출탈출구 부재, 유로리더십 공백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1100억유로의 지원이 시간만 버는 것일 뿐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란 얘기다. 단순히 지원하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진행중인 유로존 지원 스킴 자체가 존립불가능(unviable)하다는 것이다.

학계와 시장에서는 거의 컨센서스가 됐고 유럽 정치권에서도 동조의 기류가 관찰된다. 차기 유럽은행(ECB) 총재 물망에 오르는 악셀 베버 ECB 정책위원은 5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그리스 위기는 유로존 전체로 전염될 우려가 있다"라며 "그리스의 디폴트는 금융시장과 통화 시스템 안정성에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에는 독일 유력 정치인인 기독민주당의 볼커 카우더 원내 대표가 EU 일부 회원국의 파산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 독일 지원승인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시장과 학계에서 나온 그리스 디폴트론 근거는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그리스는 80년대 중남미 재판… EU, 어프로치가 틀렸다

첫째, 그리스 디폴트 위기가 80년대 중남미 외채위기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 위기의 본질이 유동성 부족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경제적 능력에 비해 나라 빚이 너무 많은데 있다(solvency crisis)것이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 유동성을 붓는다 해도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월가 이코노미스트 분석에 따르면 2013년 그리스 나라빚은 GDP 150%(3600억유로, 4700억달러)로 팽창한다. 정부채 이자율을 6%정도로 잡더라도 GDP의 9%를 이자지불에만 쓰게 되는 셈이다. 이는 그리스 정부세수의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원천적으로 존립자체가 불가능하다.

2013년5월초까지 만기도래하는 나라빚은 700억유로다. 그리스가 약속한 재정적자 목표를 지킨다고 해도 3년간 총 500억유로에 달하는 누적 재정적자를 채권발행을 통해 메워야한다. 두 수치를 합친 것만 해도 1200억유로로 이미 유럽에서 승인된 지원규모 1100억유로를 넘는다.

2. 유로에 묶인 경제 : 환율, 수출탈출구가 없다

둘째, 정책 핸디캡으로 유로존에 속한 그리스로서는 자체 환율정책을 쓸 수 있는 독자성이 없다. 즉, 자국통화를 크게 절하시켜 수출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만들어 경제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97년말 환란을 만난 아시아국가들은 수출을 통한 탈출구가 있었다. 당시는 세계경기는 호황을 유지, 자국통화 절하를 통해 거액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둘 수 있었다. 98년 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만 500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그리스는 이같은 행운이 없다. 대안으로 그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위노동비용을 20~40% 삭감해 수출 경쟁력을 살리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큰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출이라는 완충장치가 없는 그리스로서는 재정긴축에 따른 경기수축압력을 그대로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유럽연합은 계획한 재정긴축안을 실행할 경우 그리스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9%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낙관적이라는 의견이 적지않다.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려면 그리스는 유로동맹을 탈퇴, 자국통화를 복구하고 크게 절하시키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옵션을 쓰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

수출로 살길을 찾을 수 있지만 약속받은 지원을 거부당한채 유로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아마 앞으로 10년간 국제자본시장에 복귀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스판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가 불가피한 것이다.

3. 유로 리더십의 공백 : 독일 '빅브러더'로서 한계

셋째, 유로존을 이끌고 갈 리더십의 존재가 분명하지 않다. 누군가 선뜻 희생을 감수하고 유로존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빅브러더가 없다는 뜻이다.

독일이 유력한 리더로 지목돼 왔지만 이번 그리스 위기 수습과정에서 그 역할은 한계를 드러냈다. 독일은 2차대전후 미국처럼 문제를 앞장서서 풀기는 커녕 등 떠밀리다 시피해서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독일국민 대다수가 그리스 지원을 반대하는 폐쇄적 분위기를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울러 유로존에서는 단일국가로서 미국처럼 거대경제가 없다. 독일 혹은 독일과 프랑스가 10조달러가 넘는 유로존 경제문제를 앞장서서 짊어지기는 너무 벅차다. 독일 경상GDP는 3.5조달러 내외로적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국에 비하면 4/14이다.

경제의 3%에 불과한 그리스 지원 하나 매끄럽게 이뤄내지 못한 유로존의 난맥상은 앞으로 유사한 위기에 대해 더이상 공동지원을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스페인, 포르투갈로 그리스 위기가 전염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진 것도 이러한 부분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않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아직 시간은 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은 약 10%로 높다. 다만 GDP대비 나라빚비율은 그리스 113%보다 낮은 77%, 55%에 머물고 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그리스에 비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까지 그리스와 같은 사태를 맞이하면 유로동맹은 사실상 파국을 맞이할 전망이다. 역내 4위의 경제에 해당하는 나라를 지원해줄 역량을 가진 역내 나라는 아무도 없다.

결국 유로존은 단일통화경제권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지키고 유지하려면 문제가 곪아터지기 전에 각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스는 못했고 이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그 순서가 됐다. 남아 있는 시간에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로는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고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4. 4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