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금융세 유감

신인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 2010.05.04 10:15
자산규모에 비례해 금융기관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금융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지난 1월 미국 대통령 오바마(Obama)가 제안한 '금융위기 책임세'(Financial Crisis Responsibility Fee)였다. 구제금융으로 회생한 대형 금융기관들에 세금을 부과하여 위기처리에 소요된 재정비용을 회수한다는 방안이었다.

이 '금융세' 논의는 배경부터 시스템 개혁보다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 달성에 있었다. 미국은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일단 재정자금을 동원하여 대형 금융기관들을 구제한다. 그러고나니 대중의 반감과 악화된 재정적자 처리가 문제로 대두한다. 이에 금융기관의 자산규모에 비례하여 세금을 부과하자는 방안이 제안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납세자가 대형 금융기관 구제에 불만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하다. 이른바 '질서있는 정리'(orderly resolution)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스템 위기가 우려된다면 금융기관은 회생시키되, 감자와 채무조정으로 주주 및 채권자들에게 재무책임을 우선적으로 지우고, 경영진에게는 퇴진 등으로 경영책임을 추궁했어야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가 뼈를 깎는 마음으로 채택한 부실금융기관 정리방법이기도 하다. 당시 우리에게 이 방법을 조언한 미국이 막상 스스로에게는 부실 금융기관을 아무런 조건없이 구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애초 잘못 끼운 단추를 사후적으로 되돌리려니 무리가 따르는 방안이 제안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 내부의 정치동학을 배경으로 제안됐으나 미국이 자기문제를 세계화하면서 금융세는 G20 등 국제기구의 품격을 손상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금융세를 G20의 의제로 들고나온 이유는 복합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만이 금융세를 도입할 경우 금융기관들이 외국으로 주요 활동무대를 옮겨 조세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금융중심지로서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도 있다. 또 오바마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금융세를 관철하기 어려우므로, 국제적으로 금융세를 대세로 만들자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일단 미국이 내놓은 방안이다보니 다른 국가나 IMF가 이를 쉽게 기각하지 못하는 모습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IMF는 '금융안정세'라는 명목으로 금융세 도입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위험한 논리다. 모든 금융기관, 모든 금융중개행위가 금융위기로 종결되는 무분별한 투기와 거품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금융업에 대한 학계의 이론과 규제철학이 송두리째 뒤집어져야 한다. 과도한 차입영업, 단기이익과 연계된 임직원 보상체계, 금융기관과 밀착된 정책당국의 규제대응 미흡 등이 지금까지 드러난 미국 금융위기의 구조적 원인이다. 이중 세금부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금융기관에 자산규모 비례로 일률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길이 아니다. 굳이 억제해야 할 금융중개행위가 있는지를 찾는다면 단기 국제자본이동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부과하는 세금이 과도한 단기 국제자본이동에 대한 효율적 대응방법인지는 또다른 문제다.

미국은 금융세를 도입하든, 아니면 다른 어떤 세금을 도입하든 스스로 초래한 금융위기의 비용을 조용히 내부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중심지로서 명성과 경쟁력을 잃는다면 그 역시 자초한 비용이다. 금융시스템 개혁, 국제 금융체제 안정성 보완 등 보다 본질적인 주제를 논의해야 할 G20의 시간을 금융세 문제로 빼앗는 것은 보기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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