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25시]'스폰서 다이어리' 파급력은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김성현 기자 | 2010.05.04 08:56

- 수첩5권 분량 자세한 기록
- 전·현직 검사 40여명 거론
- "관련자 줄소환 냉정한 처벌"



'스폰서 검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성낙인 서울법대 교수)와 검찰 진상조사단(단장 채동욱 대전고검장)의 조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진상조사단은 지난 1984년부터 제보자 정모(51)씨가 향응 접대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이른바 '접대리스트'를 확보하고 정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진상조사단은 정씨에게 단 한번이라도 접대를 받은 인사들은 모두 조사한다는 방침으로 정씨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검사 등이 줄 소환될 전망이다.

◇'스폰서 다이어리' 파급력은?

진상조사단이 확보한 접대리스트는 수첩 5권 분량이다. 이 수첩에는 정씨가 부산과 경남지역 검사 등을 접대한 내용과 수표번호, 연락처 등이 상세히 기록돼있다.

문제의 수첩에 실명이 거론된 전·현직 검사는 40여명으로 일반직 검찰 공무원 등까지 포함하면 정씨에게 이른바 '공짜술'을 얻어먹은 검찰 인사가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씨의 접대 장부는 지난해 정·관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박연차 리스트'에 버금가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정씨가 밝힌 사건 연루자는 대부분 검찰 인사지만 정씨가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씨가 작심하고 입을 열 경우 대상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진상조사단은 정씨를 상대로 수첩 5권의 내용을 공소시효와 징계시효 순으로 조사하고 있다. 처벌이 가능한 사람부터 우선 조사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조사라는 추가적인 논란을 피하기 위함이다.

특히 야4당이 최근 이번 사건에 대한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여서 조사단의 부담이 적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정씨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관련자들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관행적으로 이뤄진 접대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법을 어겼고 공직자 윤리강령에도 위배되는 행위를 한 이상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진상조사단은 성 접대를 받은 자와 공짜 술만 얻어먹은 자를 분류한 뒤 처벌 및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정씨가 대가성을 주장할 경우 사건청탁 등과의 연관성을 찾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따라서 대가성이 입증되면 특가법상 뇌물수수나 알선수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 대부분인데다 정씨의 주장 외에는 확증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의혹 규명이 관련자 형사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하창우 대변인(변호사)는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효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관련자 처리 문제는 일단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혹 풀어줄 또 다른 열쇠 '금융장부'

현재 진상조사단은 정씨가 검사 접대에 사용했다고 주장한 수표번호가 정씨의 과거 형사사건 수사기록에도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당시 금융자료를 분석 중이다. 조사단은 정씨의 과거 사기사건과 관련된 금융장부를 확보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진상조사단은 장부를 분석한 뒤 필요하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에도 나설 방침이다. 조사단은 이를 토대로 정씨가 접대에 사용한 돈의 출처와 이동 경로 등을 파악해 정씨의 주장과 대조할 계획이다.

진상조사단은 또 정씨가 지난 2003년 신용불량 상태였고 이듬해 초에는 하도급 업자에게 1억원가량의 공사대금을 주지 않아 소송을 당한 사실에 주목, 당시 공사 대금의 일부가 검사 접대에 쓰였는지도 함께 조사 중이다.

진상조사단은 정씨가 사용한 신용카드의 매출전표와 수표 등을 추적해 관련자들의 혐의를 입증할 방침이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정씨의 자금이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정씨가 연루된 다른 형사사건의 금융자료를 토대로 우선 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직 검사 줄 소환 '초읽기'

진상조사단은 정씨를 상대로 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씨가 접대장소로 활용했다는 유흥업소 관계자 등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유흥업소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정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더해지면 진상조사단은 검사장급 2명을 포함한 현직 검사 28명을 시작으로 관련자들에 대한 줄 소환에 들어가게 된다.

일단 조사가 시작되면 진상조사단은 최대한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를 끝마쳐 이번 사건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조직 다잡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미 검찰은 이번 사건이 불거진 직후 일선 검찰에 유흥업소 출입 및 골프 금지령을 내린 상태다.

진상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대가성이 있는 금품수수와 성상납 등 단순한 접대가 아닌 위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통해 엄중 대처키로 했다.

한편 진상규명위는 4일 2차 회의를 열어 조사단으로부터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조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추가 조사를 요구하거나 위원들을 조사에 참여시키기로 했다. 하 대변인은 "진상규명위원이나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추천하는 변호사가 직접 조사에 참여하는 게 법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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