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완벽주의'와 '권위의식' 사이

더벨 이재영 기자 | 2010.04.30 10:50

[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4월28일(07:2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모 자산운용사 공모주 펀드매니저 A씨는 최근 삼성생명이 주관한 소규모 기업설명회(IR) 모임에 참석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며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

식사 후 삼성생명 관계자들과 간단히 담소를 나눈 A씨는 회사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삼성생명 관계자가 황급히 A씨를 붙잡았다. "IR자료는 돌려주셔야 합니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IR을 시작하며 책자로 된 투자설명서와 요약 IR자료를 받았는데, 그 중 요약 IR자료를 돌려달라는 말이었다.

자본시장법상에 기업공개(IPO)시 투자설명서를 바탕으로 IR을 진행하라고 돼있다는 게 이유였다. 요약 IR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법규에 어긋나므로 외부 반출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들은 당연히 주는 자료를 굳이 회수해가는 삼성생명에게 A씨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 삼성생명 수요예측은 지난 22일부터 이틀간 진행됐다. 마감시한은 23일 오후 3시였다. 3시 정각이 되자 삼성생명은 주관사를 통해 열어둔 창구를 닫고 더 이상의 수요예측 참여를 받지 않았다.

마감시한을 잘못 알아 미처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한 B기관이 신청을 받아달라고 애원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보통 IPO에선 수요예측 마감시한이 지나도 기관과의 관계를 생각해 신청을 받아준다. 뒤늦게 신청이 몰리면 마감시한을 연장해주기도 한다.

삼성생명의 단호한 태도에 업계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B기관의 딱한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 한 운용사 관계자는 "그래도 공모에 참여하겠다는 투자자인데 못 이긴 척 받아줬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B기관의 담당자는 목이 달아날 판"이라고 말했다.

# 삼성생명은 수요예측 마감 당일인 23일 공모가 확정과 기관 물량 배정을 모두 완료했다. 27일로 명시해 둔 공모가 확정일을 4일이나 앞당긴 것. 일반적으로 이 절차엔 수요예측 마감 후 3~4일 정도가 소요된다.


삼성생명이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공모가 확정과 기관 물량 배정을 끝낸 이유는 간단했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변심'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국내 기관은 수요예측에 참여한 동시에 배정 물량에 대한 인수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해외 기관은 수요예측(겸 IR)을 2주나 실시하는 데다 관례상 물량 배정이 끝나야 인수 의무를 갖게 된다.

삼성생명은 최근 골드만삭스 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우려했다. 금요일 수요 예측이 끝났기 때문에 주말 미국·유럽 증시가 폭락할 경우 손 쓸 새도 없이 해외 투자가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때문에 수요예측 마감 당일 물량 배정 완료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일각에서 삼성생명에 대해 '덩치에 맞지 않게 째째하다'는 평을 내리는 것은 이런 사례들 때문이다. IR과 수요예측 기간 내내 삼성생명이 업계에 보여준 것은 협조와 성의가 아니라 자로 잰 듯 철저한 리스크 관리뿐이었다.

삼성생명의 고민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4조8881억원이라는 국내 증시 사상 최대의 공모 규모 덕에 삼성생명은 시장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IPO의 목적인 삼성차 채권단 소송 외에도 삼성생명 가입자 배당금 반환 소송 등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가 한두 건이 아니다. 짝 다리부터 짚고 보는 반(反)삼성 정서도 부담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삼성생명의 권위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내 식대로' 공모를 진행해도 기관들은 결국 삼성생명 주식을 담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심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대한생명처럼 1대 1 밀착 미팅이나 기관을 직접 방문하는 IR을 진행하지 않았다. 마케팅 전략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설마 청약을 안 오겠어?'라는 생각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런 깐깐한 운영과 관리로 수요예측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시장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타지 않고 결국 '튀어 버린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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