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투자은행과 이해상충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 | 2010.04.27 09:40
2006년 말 헤지펀드 폴슨&Co는 지난 몇년간 달아올랐던 미국 주택시장 열기가 곧 식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려면 주택시장이 하락하는 쪽에 베팅할 상품이 필요했다. 폴슨&Co의 의뢰를 받은 골드만삭스는 기대에 부응한 답을 제공했다.

그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과 연계된 합성CDO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폴슨&Co는 이 CDO가 지급불능에 빠질 경우 돈을 받는 CDS 계약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폴슨&Co가 대박을 터트릴 것이 확실해 보였다. 문제는 독성채권과 연계된 CDO에 투자할 멍청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희생양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소형은행인 IKB였다. 2007년 4월 IKB는 미끼를 물었다. 그리고 불과 몇달 후 미국 주택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IKB는 자신이 투자한 1억5000만달러의 거의 대부분을 잃고 구제금융을 받는다. 나머지 투자자들의 투자손실까지 합하면 전체 손실은 10억달러에 달한다. 반면 CDS계약을 통해 숏포지션을 취한 폴슨&Co는 10억달러의 이익을 얻었으며, CDO 거래를 기획하고 판매한 골드만삭스는 1500만달러를 수수료로 챙겼다.

이상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제소하면서 밝힌 사건의 대강이다. SEC의 주장대로라면 골드만삭스는 고객인 폴슨&Co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다른 고객인 IKB를 골탕 먹인 꼴이다.

SEC의 발표 직후 골드만삭스는 발끈했다. 자신은 위법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법행위의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SEC에 있는 만큼 골드만삭스가 패소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금융기관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SEC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자신의 고객인 IKB에 해당 CDO가 사실은 폴슨&Co가 숏포지션을 취하기 위해 기획한 것임을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는 시장조성자인 투자은행은 거래 상대방의 의도를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골드만삭스의 본업이 트레이더라면 분명 맞는 말이다. 숨막히는 시장에서 때로는 상대를 속이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트레이더에게는 어느 누구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객을 위해 일하는 투자은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2006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쇠퇴를 예상해 포지션 감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자신은 관련 자산을 줄이는 시점에 고객에게는 정반대로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 이미 2004년부터 자신과 거래를 해온 IKB를 고객으로 간주했다면 말이다. 결국 IKB는 고객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넘어야할 트레이딩 상대방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원래 골드만삭스는 고객과의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시해온 명망 있는 투자은행이었다. 그러나 트레이딩룸에서 잔뼈가 굵은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CEO가 된 바로 그 순간 고객중시의 전통은 이미 약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용납하지 않는 트레이더 출신이 주도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고객을 위해 일하는 뱅커들의 입지가 좁아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골드만삭스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금융기관의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골드만삭스의 홈페이지에 선명히 나와 있는 문구처럼 금융기관은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clients first)이라는 선한 의도를 지녀야 한다. 이걸 잊으면 금융기관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당위성은 사라진다. 안방을 차지한 종들이 주인의 돈으로 잔치를 벌이면서 주인의 하염없는 인내심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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