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천국 명동에 은행이 많은 이유는?

머니투데이 도병욱 기자 | 2010.04.26 15:56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맞은편 골목. 흔히 명동 중심가라고 불리는 이 거리는 한때 젊음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의 메카다.

하지만 이곳에 관광객을 노리는 화장품 상점만큼이나 많은 것은 다름 아닌 은행 지점. 거리 입구부터 명동성당까지 걸어서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모두 6개의 은행 지점이 있다.

↑명동 중심가에 있는 은행 지점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순으로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농협중앙회, 외환은행, 하나은행)
범위를 명동 일대로 넓히면 은행 지점은 더욱 많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과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은행 지점들이 널려있다. 은행 지점들이 나란히 서 있거나 마주보고 위치하는 일이 흔할 정도다. 한 은행 직원이 "5m마다 은행 지점이 하나씩 있다고 보면 된다"고 표현할 정도.

은행 본점도 명동 주변에 몰려 있다. 외환은행 본점은 을지로 1가 주변에 있고, 명동을 끼고 지나가는 도로변에는 KB금융지주 본점이 있다. 은행권 협회인 은행연합회 건물도 명동에 있다.

외환은행 본점 맞은편에는 기업은행 본점이, 외환은행 대각선 방향으로는 하나은행 본점이 있다. 명동 끝자락인 4호선 회현역 인근에는 우리은행 본점이 자리 잡고 있다.

젊음의 거리이자 관광객의 거리인 명동에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은행이 몰려 있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명동의 땅값은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우리은행 명동지점은 '땅값이 가장 비싼 곳'으로 매년 뉴스에 나올 정도다.

이런 점만 보면 명동에 은행들이 많은 사실을 이해하기 힘들지만, 시계를 100년 전으로 되돌려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명동과 은행의 관계는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인 대한천일은행이 생긴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천일은행이 세워진 곳은 지금 청계천 광교 인근. 당시 정통상권인 종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위해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일본 금융기관들은 대한천일은행보다 조금 남쪽인 지금의 명동 인근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 조선은행 등이 대표적인 예. 종로상권은 물론 당시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충무로 등지와도 가까웠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됐다. 당시 한국은행과 증권거래소(현재 한국거래소)가 명동 인근에 있었던 것도 명동에 은행을 모이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단기금융을 담당하던 단자회사와 채권회사들도 명동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채시장도 명동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정보는 얼굴을 맞대고 오가던 시절이었고, 명동 바닥을 휩쓸고 다녀야 돈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명동이 이른바 '금융 1번지'가 되자 새로 생겨나는 은행들도 시너지 효과를 위해 명동에 본점을 내야 했고, 은행 지점들도 계속해서 생겨났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볼 때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서울은행, 하나은행, 보람은행, 신한은행 등이 명동 인근에 본점을 두었다. 당시 주요 은행 대부분이 명동에 위치했던 것.

명동지역의 지점도 위상이 셌다. 명동 지점장으로 부임하면 "이제 곧 임원으로 승진 하겠네"라는 축하 인사를 들을 정도였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외환위기 이후 종금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고 명동 사채시장이 명성을 잃으면서다. 은행권의 합종연횡도 은행 본점의 명동 이탈을 부추겼다. 1979년 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함에 따라 증권사들이 여의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분위기를 전환시킨 요인 중 하나.

이 때문에 현재 금융 1번지의 명성은 여의도로 넘어간 상태다. 금융위원회과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서울본부, 국민은행 본점 외에 수많은 증권사들이 여의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명동은 은행에게 특별한 지역이다. 최근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를 명동에서 가장 먼저 눈치 챌 정도로 명동에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정보들이 흘러나오고 있고, 이 지역에서 거래하는 고객들 가운데는 '놓쳐서는 안 되는' 이들도 있다. 은행들이 실적이 쪼그라들었음에도 명동지점을 'A급 지점'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게 그 방증.

한 은행의 명동지점 직원은 "외환위기 전과 비교하면 실적 등의 측면에서 명동의 중요성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은행이라면 명동에 큰 지점을 하나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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