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여의도 산업은행 서관 3층 트레이딩센터. C딜러는 종가를 확인하고 쾌재를 불렀다. 전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연저점 근처(1107.8원)에서 마감됐던 원/달러 환율이 이날 0.5원 올랐기 때문이다. 이틀 연속 하락한 원/달러 환율이 소폭 반등할 것으로 생각해 롱(매수) 포지션을 구축했던 게 적중하며 이익을 냈다.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1억 달러를 한 번에 배팅할 수 있는 딜러들은 하루 포지션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개선문을 통과할 수도 패잔병이 될 수도 있다.
외환딜러들의 하루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전쟁이다. 서울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 외환시장이 24시간 개장돼 있어 외환 딜러들은 일분일초의 예외 없이 20인치 모니터를 봐야 한다. 4월 들어 환율 하락과 변동 폭이 커지면서 외환 딜링 룸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해지고 있다.
시시각각 급변동하는 외환시장에서 순발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포지션이 승패를 결정할 때가 많다.
같은 은행 A대리는 "골드만삭스 피소 여파로 20일 하루 원/달러 환율 변동 폭이 15원 가까이 됐다"며 "21일 환율이 추가로 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반대로 2000만 달러 가량 숏(매도) 포지션을 구축해 1억 원 이상을 벌었다"고 말했다. 순간 롱 포지션을 잡았다면 반대로 1억 원 이상을 날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순간에 수억을 벌고 잃는 딜러들의 하루는 일반의 예상보다 긴장감의 정도가 훨씬 심하다.
하나은행의 B딜러는 장 마감 후에야 화장실을 가기 위해 벌떡 일어섰다. 그는 “1110원에 팔았는데 바로1120원대로 올라 손실을 보는 게 딜링이다. 장중엔 한시도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며 "점심은 배달 도시락으로 떼우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특히 장 마감 직전 환율이 급변동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후 2시 반부터 3시까지 딜링 룸은 폭풍 전야의 분위기다. C딜러는 "3시 마감 후 먹는 도너츠 하나가 최고로 꿀 맛"이라고 말했다.
장 마감 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잠시. 퇴근 후에도 역외환율 시장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고, 정보 수집에도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
B딜러는 “분위기는 아래쪽인데 작은 악재에도 환율이 반등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포지션을 잡기가 쉽지 않다”며 “시장이 작은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작은 뉴스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A딜러는 "보통 6시 전엔 퇴근을 하는 데 퇴근 후에도 정보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딜러들을 만나는 술자리가 많다"고 전했다.
외환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거래량이 많아진 것도 딜러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올 1분기 은행간 하루 평균 외환거래 규모는 236억7000만 달러. 지난해 4분기 227억 달러에 비해 4.3% 증가했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3분기 238억5000만 달러 이후 1년 반 만에 최대 규모다.
외환은행의 D딜러는 "국내외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외환 거래가 꾸준히 늘었다"며 "자연히 환차손을 노린 투기적 거래도 증가하고 있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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