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채권 발행시장의 18~20%를 차지하는 큰손이다. 안정성을 추구하다보니 기금의 상당부분(73%)을 국내 채권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투자를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규모 채권 매입 시 금리 하락 우려가 있고 더 규모가 커지면 팔고 싶어도 팔 곳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를 원하는데 채권시장의 60%가 4년 만기 이내라 한계가 있다.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불어나면서 국내에서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매달 2조원씩 늘어나며 올해 말에는 300조원, 2012년에는 4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이미 지난해 기금 규모가 270조원을 기록하며 미국 최대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캘퍼스)을 제치고 세계 4위에 올랐다. 일본 공적연금(GPIF), 노르웨이 글로벌연금펀드(GPF),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다음으로 운용자금 규모가 크다.
그러나 국민연금 투자는 국내에만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주식과 채권에 각각 36조원(13%)과 204조원(73%)을 투자한 반면 해외 주식과 채권에는 각각 13조원(4.7%)과 10조원(3.8%)을 투자했다. 부동산까지 포함해도 해외투자 비중이 10%를 넘지 못한다.
이 같은 국내 시장 편중이 금융시장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주식시장만 해도 국민연금은 이미 포스코, KT 등 90여 개 종목의 1대 주주다.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4%에서 올해 5%대로 올라서고, 4~5년 후에는 10%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이 웬만한 종목의 1대 주주가 될 수 밖에 없다"며 "증시 비중이 10%를 넘지 않는 수준, 약 9%를 (시장 왜곡이 없는)한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전 이사장은 "지금의 국민연금 규모라면 해외로 나가야 한다"며 "캘퍼스만 해도 자산의 절반이 해외 투자"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해외투자 비중(10%)은 세계의 다른 연기금과 비교해 매우 적다. 국민연금과 규모가 비슷한 캘퍼스는 해외 주식(28.4%)과 채권(2%)을 합쳐 30% 이상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부동산과 대체 투자 등을 합치면 이 비율이 5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나 온타리오 사학연금은 해외 주식에 30~40%를 투자해 국내 주식보다 많고 ABP는 60% 이상이 해외 투자로 파악된다. 이들은 국내 시장이 작은데다 언어적 장벽이 낮고 제도 등이 비슷해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가 쉽다.
동양권인 일본의 공적연금(GPIF) 역시 해외 투자 비중이 채권 11.4%, 주식 14%로 25%를 넘는다. GPIF는 거대 기금의 국내 소화가 어려워지자 2003년부터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에 나섰다.
위경우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투자 규모가 너무 많으면 매매에 따른 가격 변화가 커지고 유동성 확보도 어렵다"며 "대규모 매도 시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밖 에 없고 기금운용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자금이 한정된 시장(국내)에 들어가면 내부 집중 리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 이자율 하락, 주식가격 왜곡 등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투자는 국내보다 정보수집이 어렵고 환위험 등이 있어 신중한 운용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철저한 준비 없이 해외로 나갔다가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을 만나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 국민연금은 올해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을 각각 5.1%와 4.1%로 늘려 잡았다. 2014년까지는 해외 주식에 10% 이상 투자하고 해외 채권도 10%까지 늘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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