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스]포퓰리즘論에 대한 유감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 | 2010.04.20 09:45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사촌인 그는 아마추어 발명가였으며, 모험심 가득한 탐험가이기도 했다. 병적일 정도로 통계와 측정에 집착한 이 독특한 인물은 자본시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이유는 그가 저 유명한 평균회귀의 법칙을 최초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유전과 형질에 대해 열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던 골턴은 연구 과정에서 엘리트주의에 빠지게 된다. 대중을 불신하던 그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권력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은 것이다. 골턴의 이런 생각은 그러나 그의 말년에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소의 무게를 맞히는 대회에서 8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추정한 평균값이 거의 정확하게 실제 무게와 일치하는 사건을 목격하면서다. 집단으로서 대중은 그의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은 지혜로운가?

제임스 서로위키는 그의 저서 '대중의 지혜'에서 몇 가지 조건을 전제로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판정을 내렸다. 그가 제시한 많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집합체로서 대중이 그 구성원의 인지적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력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주식시장이 될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거대한 집단인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뛰어난 선행성을 보여왔다. 소위 효율적 시장가설은 더 나아가 어떤 전문가도 이러한 시장의 판단을 앞설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는 현대 재무이론의 근간이 됐다.

과연 대중은 지혜로운가?


적어도 다수의 한국 지식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수년간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 중 하나가 소위 포퓰리즘이다. 통상 인기영합주의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다분히 경멸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그 경멸은 대중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한 비난이며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인식론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중의 어리석은 행태는 드문 일이 아니며 때로 그것은 무지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광기로 발전하기도 한다. 일찍이 구스타프 르봉은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공통분모가 군중을 어떻게 집단적 광기로 인도하는가를 잘 보여준 바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주요 일원이던 에리히 프롬 역시 히틀러의 등장을 집단의식 속에서 독일국민의 이성이 마비되어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주식시장의 버블은 대중의 광기에 대한 생생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은 어리석은가?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지식인들의 담론에서 남발되는 소위 포퓰리즘론은 매우 위험해 보인다. 그것은 서로위키가 규명한 대중적 지혜의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탈렙이 '검은 백조'에서 지적한 것처럼 포퓰리즘 이상으로 위험한 것은 소위 진리를 담보했다고 확신하는 자들의 오만함이기 때문이다. 르봉과 프롬이 광기의 대중 속에 지식인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포퓰리즘론이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대의정치에 중대한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야말로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에 앞서 신중함과 겸손의 미덕이 요구되는 이유다. 프로이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류에게 과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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